1947년 영국서 독립 후 여러차례 전쟁…종교 문제·테러 등과 엮여
(뉴델리=연합뉴스) 김영현 특파원 = 핵보유국 인도와 파키스탄이 공군기까지 동원해 '살 떨리는' 군사적 충돌을 벌이면서 두 나라가 70년 이상 끈질기게 이어온 분쟁의 역사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26∼27일 공습을 주고받으며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인도 공군기가 26일 파키스탄령 내 '테러조직 캠프'를 공습하자 파키스탄 공군은 다음날 인도 공군기 2대를 격추하면서 전면전 우려가 고조되는 분위기다.
역사상 핵보유국끼리 공습을 벌인 것은 처음이라고 외신이 전할 정도로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양국은 1947년 영국에서 각각 독립할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치열하게 대립했다.
애초 한 나라로 여겨지던 인도와 파키스탄은 힌두교와 이슬람교 중심으로 각각 갈라지면서 분쟁의 씨앗이 잉태됐다.
특히 핵심은 카슈미르였다.
다른 인도 지역과 달리 카슈미르 주민 대부분은 무슬림이었지만 지배층은 힌두교를 믿었다. 처음부터 갈등을 내재한 상태였던 셈이다.
종족 구성상으로는 카슈미르가 파키스탄에 귀속되는 게 순리처럼 보였으나 힌두 지도자가 인도에 통치권을 넘기려 했다.
그러자 1947년 10월 파키스탄의 지원을 받은 무장 부족집단이 주도인 스리나가르를 침공했고 분쟁은 본격화됐다.
카슈미르 지도자인 마흐라자 하리 싱은 곧바로 인도에 지원을 요청했다. 결국 분쟁은 이듬해 인도와 파키스탄 간 첫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양측은 유엔의 중재로 한발 뒤로 물러났고, 카슈미르는 파키스탄령(아자드-카슈미르)과 인도령(잠무-카슈미르)으로 분단됐다.
인도는 주민투표를 통해 잠무-카슈미르의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미루다가 잠무-카슈미르를 연방의 하나로 편입해버렸다.
현지 주민과 파키스탄은 강력하게 반발했고 파키스탄은 1965년 수천 명의 게릴라를 앞세워 2차 전쟁을 일으켰다.
3차 전쟁은 인도가 1971년 동파키스탄 독립 문제에 개입했다가 발발했다.
인도는 이 전쟁에서 일방적으로 승리했고 동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로 독립했다.
하지만 카슈미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1947년의 휴전선을 정전 통제선(LoC, Line of Control)으로 교체하는 등 현상만 유지하는 데 그쳤다.
양국은 1999년 다시 총을 겨눴다.
파키스탄 무장 세력이 다시 인도령 카길 지역을 침공해 치열한 전투가 빚어진 것이다.
특히 당시는 양국 모두 핵실험에 성공한 직후라 국제사회는 '핵전쟁'의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하지만 카길 전투는 인도 공군기가 LoC를 넘어가지 않을 정도로 갈등이 더 폭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마무리됐다.
그러다가 인도 공군이 지난 26일 1971년 이후 처음으로 LoC를 넘어가 공습에 나선 것이다.
양국은 2008년 뭄바이 테러의 배후를 놓고 대립한 적도 있다.
2008년 민간인과 군 등 180여명이 사망한 당시 테러의 주 용의자가 파키스탄 테러단체의 지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인도 정부는 뭄바이 테러에 파키스탄 정부가 개입했다고 주장했고 양측이 카슈미르에 군사력을 대거 동원하면서 긴장이 크게 고조된 바 있다.
이번 인도-파키스탄 '공습 갈등'은 지난 14일 잠무-카슈미르주에서 발생한 자살폭탄 테러로 경찰 40여명이 사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인도는 역시 파키스탄을 배후로 지목하고 보복을 선언했지만, 파키스탄은 자살폭탄 테러와는 무관하다며 "증거를 보여달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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