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대사관 난입해 4시간가량 머물며 컴퓨터 여러 대 훔쳐 달아나
北대사관 경찰에 신고도 안 해…사건 배후 놓고 의혹 증폭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에 괴한들이 침입해 대사관 직원들을 결박해놓고 4시간가량 대사관을 뒤져 여러 대의 컴퓨터를 훔쳐 달아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괴한들 중에는 북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져 사건의 배후를 두고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과 스페인의 인터넷신문 '엘 콘피덴시알'에 따르면 지난 22일 마드리드 외곽 아라바카에 소재한 주(駐) 스페인 북한 대사관에 신원미상의 괴한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대사관 직원들을 결박해놓고 대사관을 뒤져 컴퓨터 여러 대를 훔쳐 달아났다. 괴한들은 북한 대사관에 무려 네 시간 이상을 머무른 것으로 파악됐다.
'엘 콘피덴시알' 보도에 따르면, 당시 결박된 북한 대사관의 여성 직원 1명은 몰래 스스로 결박을 풀고 밖으로 나와 이웃에 한국어로 소리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고함을 들은 한 주민이 이를 스페인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순찰 경관들을 현장에 보냈다.
경찰관들이 조사를 위해 북한 대사관에 들어가려고 문을 두드리자 대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서 '아무 일도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수상한 낌새를 느낀 경찰관들은 대사관 밖에 잠복한 뒤 동태를 살폈다.
잠시 후 대사관 정문이 열리자 차량 두 대가 고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들은 대사관에 들이닥친 괴한들이었다.
한 경찰관은 달아난 차량 중 1대의 운전자가 조금 전 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한 인물과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스페인 경찰은 단순 강도일 가능성을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히 경찰은 괴한들이 훔쳐간 다수의 컴퓨터 안에 어떤 정보들이 담겨있는지를 북한 대사관을 상대로 조사 중이다.
괴한들이 북한 대사관이 갖고 있던 특정 정보를 노렸을 가능성도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대사관이 이 사건을 당초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처음에 경찰에 대사관 직원인 척 '아무 일도 없다'고 둘러댄 인물이 괴한 중 하나라는 경찰관의 진술 역시 이번 사건을 둘러싼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엘 콘피덴시알은 이 사건으로 북한 대사관 직원 3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전했다.
스페인 정부는 해당 사건을 인지하고 북한 대사관 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페인 외교부는 로이터통신의 질의에 "북한 대사관과 긴밀히 접촉하고 있으며 사건 발생 직후 경찰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 더 코멘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스페인과 북한은 2001년 외교 관계를 수립했으며 2013년에야 마드리드에 북한 대사관이 정식으로 개설됐다.
스페인 정부가 지난 2017년 9월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에 항의해 당시 김혁철 대사를 추방하면서 현재 북한 대사관에 근무하는 외교관은 공식적으로는 상무관 단 1명뿐이다.
괴한들에 결박당한 다른 직원들은 이 상무관의 가족이거나 다른 행정보조원으로 추정된다.
[로이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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