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에 학업 포기한 이들을 위한 대안교육 프로그램 제공
유네스코와 협업, "청소년의 학업 성취와 인권 증진에 도움"
(마닐라=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이혼한 어머니의 불안정한 직업과 잦은 이사로 초등학교도 다 못 마쳤었는데 대안교육 프로그램 덕분에 올해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무얼 할 수 있을지 꿈꾸는 것조차도 허락 안 됐던 제가 이제는 변호사가 돼 사회적 약자를 돕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모린키스 베로나·17)
정무 무상원조 전담기관인 코이카(이사장 이미경)가 28일(현지시간)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학교 밖 소녀를 위한 교육포럼'에서 비정규교육시스템인 ALS(Alternative Learning System)를 통해 고등학교 과정까지 마치고 산페드로대학에 입학한 베로나 씨는 사례발표자로 나서서 이같이 밝혔다.
ALS는 필리핀 교육부가 불우한 환경으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던 사람들에게 나이·성별에 제한 없이 기본 교육에 대한 기회를 제공해 다음 단계 교육과정에 진학하도록 돕는 대안교육 프로그램이다.
교육부 산하의 ALS 지역센터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은 모바일을 통해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코이카는 2017년부터 유네스코와 협력해 ALS의 개선과 교육 프로그램의 업그레이드를 추진해왔다. 단순 학업의 연장뿐만 아니라 인성 교육·적성개발 등 자립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게 초점을 맞추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온 베로나 씨는 "ALS를 통해 의사·변호사가 된 선배들과의 멘토링에 참여하면서 꿈꾸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긍정의 마인드가 생겼다"며 "초등과정을 다시 시작했을 때 장래 변호사가 되겠다니까 주변에서 허황한 꿈이라 했는데 이제는 응원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례발표자로 나선 로다 코레스(28) 씨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면서 가계가 기울어 학교를 그만두고 어려서부터 가정부 일을 해왔지만 맘속에는 늘 공부에 대해 아쉬움이 있었다"며 "ALS 덕분에 일하면서도 늦깎이 공부를 할 수 있게 돼 고교졸업 자격을 취득했다. 졸업장보다 더 기쁜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것"이라고 기뻐했다.
필리핀 정부는 2013년 교육제도를 개편해 의무교육 기간을 10년에서 12년으로 늘리고 무상교육을 확대하는 등 인적자원 개발을 중점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도 빈곤 가정 아동의 중등교육(7~10학년) 이수율이 31%에 불과해 정규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지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코이카는 이날 12년제 정규 교육제도에 부합하는 ALS 중등교육 커리큘럼과 교사지도 가이드, 교재 등이 담긴 프로그램을 필리핀 교육부에 기증했다. 이 자리에는 전국 ALS센터 소속 교사와 교육에 참여해온 학생 등 200여 명이 함께했다.
유네스코에서 코이카의 ALS 프로그램 개발을 총괄해 온 최미영 박사는 "한국의 검정고시처럼 학교를 나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학력 인정 프로그램이지만 진로상담과 인성교육을 위해 전담교사 역량 강화도 포함하는 게 특징"이라고 소개했다.
코이카는 '학교 밖 소녀를 위한 교육사업'의 일환으로 2013년 하이옌 태풍으로 막대한 피해를 본 필리핀 중부의 타클로반 지역에 ALS 교육센터를 설립하고 운영 시스템 마련에도 나선다. 지역 내 ALS 교사 역량 강화와 여성 아동 인식 증진 프로그램도 도입해 재난으로 인한 가난 등 2차 피해로 정규교육에 복귀하지 못한 여성들의 교육과 인권 증진에 기여할 계획이다.
프로그램을 전달받은 헤수스 로렌조 마태오 교육부 차관은 "교육이야말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며 "현재 84만여 명이 ALS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데 코이카와 유네스코의 도움으로 더 알찬 교육을 진행하게 됐다"고 기뻐했다.
이미경 이사장은 "교육은 코이카의 지향점 중 하나인 사람 중심의 가치를 증진할 수 있는 핵심 분야로, 특히 소외된 아이들의 현재와 미래를 보듬는 일에 참여하게 돼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며 "혜택을 받은 많은 아이가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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