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옥동중 박재훈군, '칭찬·밀당·호소' 등 설득력 갖춘 편지 보내
보루네오 "당돌하지만 진심 담겨 대견"…사물함 210개, 1천600만원어치 선물
(울산=연합뉴스) 허광무 기자 = "쓸만한 사물함 있으면, 버리지 말고 우리 학교에 좀 주세요."
한 중학생이 일면식도 없는 가구업체 대표에게 '사물함 좀 달라'며 부탁의 손편지를 썼다. 천진하고 다소 맹랑하기까지 한 이 편지에 업체는 선뜻 응했다. 편지를 보낸 학생과 학교는 총 210개, 1천600만원 상당의 사물함을 답장으로 받고 깜짝 놀라며 기뻐했다.
울산 옥동중학교 1학년생인 박재훈 군은 지난해 말 편지지를 펴고, 인천에 본사를 둔 보루네오가구의 김삼기 대표이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나갔다.
4장짜리 편지는 보루네오를 향한 '귀여운 아부'로 시작한다.
'과학기술자를 꿈꾸는 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박군은 "부모님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가구회사가 어디냐고 여쭈어보니 '보루네오'라고 말씀하셨다"면서 "50년이 넘도록 최고의 기업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이사님과 모든 직원이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옥동중은 1992년 개교한 울산 명문이자, 현재 21개 학급 550여명 재학생이 있다"고 학교를 소개하면서 "조금이라도 나은 학교 환경을 만들고자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리게 됐다"고 본론을 꺼냈다.
그는 "중학교에 입학하니 너무 낡고 작은 사물함이 불편해서 선생님께 여쭤보니 '예산 문제로 당장 교체가 어렵다'고 하셨다"면서 "3월에는 후배들이 입학하는데 같은 불편함을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고 호소했다.
박군은 "사물함이나 라커룸을 교체할 일이 있을 때 아직 쓸만한 것들이 있으면, 폐기하지 말고 우리 학교에 기증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큰 가구를 만들고 남는 자투리 자재로 만들어도 될 것 같다"는 제안도 건넸다.
판매용 제품이 아닌, 중고 사물함이나 자재를 재활용한 제품을 달라는 정중한 요청이었다.
그러면서 "우리 꿈나무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보루네오처럼 사회에 공헌하고, 필요한 일꾼으로 무럭무럭 자라겠다"는 약속도 곁들였다.
'밀당'(밀고 당기기)이 포함된 고급 설득의 기술이 담긴 박군의 편지는 김 대표이사에게 전달됐고, 다른 임직원들에게도 공유됐다. 회사 이사회에서도 편지는 화제가 됐고, 결국 회사는 지원을 전향적으로 검토했다.
보루네오가구 측은 지난 1월 옥동중을 방문해 열악한 사물함 상태, 새 사물함을 설치할 공간 등을 살폈다. 곧장 3학년생용 사물함 210개를 제작해 지난 2월 19일 학교에 전달했다.
목재로 된 사물함 210개는 대학교 등에 납품하는 것과 같은 디자인으로, 소비자가격으로 1천600만원에 달하는 규모다.
보루네오가구 관계자는 1일 "요즘 경기 부진으로 기업도 사정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도움을 구하는 박군의 진심이 기특했다"면서 "사회적 공헌을 표방하는 기업으로서 이런 부탁을 외면할 수 없어 지원하게 됐고, 이번에 교체하지 못한 나머지 사물함도 연차적으로 바꾸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고도 반신반의했으나 새 사물함을 덜컥 받게 된 박군은 "편지를 보냈지만, 정말 사물함이 올 줄은 몰랐다. 정말 고맙다"면서 "친구, 선후배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조해도 옥동중 교장은 "어른들은 생각하기 쉽지 않았을 일을 학생다운 순수함과 당돌함으로 이뤄낸 박군이 대견하다"면서 "학교를 사랑하고 학습환경 개선을 바라는 박군의 마음과 행동이 귀한 결실을 가져왔다"고 칭찬했다.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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