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017년에 원유·정유제품·석탄 등 '역대 최강' 제재 결의
에너지난 해소하고 외화벌이 포석 관측…중러도 목소리 키울듯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특파원 =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대북제재에 대한 이견으로 결렬된 가운데 북측이 미국 측에 요구한 제재해제를 언급, 그 내용이 무엇인지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 리용호 외무상은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인 1일(현지시간) 하노이 시내 멜리아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제재해제가 아니고 일부 해제, 구체적으로는 유엔 제재결의 11건 가운데 2016년부터 2017까지 채택된 5건, 그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들만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존의 단순히 제재해제를 요구하던 데서 보다 구체적으로 요구 사항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북한이 요구한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은 안보리 대북제재 가운데 웬만한 내용은 다 걸릴 수 있는 포괄적 요구로 풀이된다. 대북제재의 상당수 내용이 북한으로 들어가는 유류와 외화 차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이는 결국 '민수경제와 인민생활'과 연결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제재의 '일부 해제'를 강조했지만, 미국은 북측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제재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전면적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고 밝힌 반면, 리 외무상이 자신들은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고 반박한 것도 이 같은 북미 간의 인식차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이 언급한 대로 유엔 안보리가 채택한 대북제재 결의는 2006년 7월 1695호부터 지난 2017년 12월 마지막으로 채택된 2397호까지 총 11건이다. 다만 1695호는 강제적 제재내용이 없어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응한 2006년 1718호부터 총 10건이 실질적인 제재결의로 언급돼왔다.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총 6건의 제재결의가 채택됐으며, 리 외무상이 5건이라고 언급한 것은 단순히 북한 기관과 개인을 제재리스트에 포함한 2017년 6월 2356호를 제외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는 결의가 금지하는 북한의 핵실험이나 중장거리 위주의 탄도미사일 시험을 할 때마다 채택돼왔으며, 제재 대상을 넓히고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져 왔다.
특히 북한이 언급한 2016~2017년에 채택된 대북제재 결의는 새롭게 채택될 때마다 '역대 최강'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도를 더해왔다.
북한은 2016년부터 채택된 일련의 제재결의로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것으로 관측돼왔다. 제재해제에 대한 북한의 요구가 집요한 것은 그만큼 북한이 제재로 '아프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대북제재는 거의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북한의 제재해제 요구는 원유·정유제품 금수를 풀고 달러화 확보를 위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제재결의 2397호는 북한에 대한 정유 제품 공급을 연간 50만 배럴로 제한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정유 제품 수출이 연 450만 배럴로 추산된 가운데 앞선 결의에서 200만 배럴로 상한을 설정한 데 이어 제재를 더 강화한 것이다.
북한의 '생명선'으로 인식되는 원유 공급도 '연간 400만 배럴'로 제한하고 있다.
원유 관련 콘덴세이트(condensate·천연가스에 섞여 나오는 경질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와 액화천연가스(LNG)의 대북 수출은 전면 금지하고 있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와 미국은 북한이 해상에서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원유나 정제유를 이전받는 방식으로 제재를 회피해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제재결의 2397호에서는 '달러벌이'를 위해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24개월 이내에 송환하도록 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해 40여 개국에 최소 5만 명, 최대 10만 명을 파견해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돼왔다.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석탄은 물론, 철·철광석·납·납광석·은·동(구리)·니켈·아연 등의 광물과 수산물, 직물과 의류 중간제품 및 완제품 등 섬유 수출도 전면 금지하고 있다.
북한의 석탄, 철광석, 수산물 수출금지로 연간 10억 달러의 자금 차단 효과가 있을 것으로 당시 우리 정부는 물론 유엔 관계자들은 추산한 바 있다. 10억 달러는 30억 달러로 추정되는 북한의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 규모다.
이밖에도 북한과의 합작 사업체 설립 금지 및 기존 합작 사업체 폐쇄, 북한 은행의 유엔 회원국 내 지점 및 사무소 개소 금지 및 기존 지점 폐쇄, 북한행(行) 또는 북한발(發) 화물이 육로·해로·항로로 회원국을 지나갈 경우 화물에 대해 전수조사 의무화 등 북한에 대한 제재는 마치 그물망처럼 촘촘하다.
이에 따라 제재 가운데 특정 부분을 해제할 경우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북한이 제재해제 요구를 보다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나서면서 유엔 무대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제재해제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관측된다.
유엔 소식통들은 북한이 요구하는 수준의 제재해제를 위해서는 새로운 안보리 결의가 필요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lkw77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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