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17일까지 '9세기 아랍 난파선' 특별전
서아시아인이 좋아한 중국 녹유자기·청화백자 선보여
(목포=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높이 8.9㎝, 입지름 10.9㎝, 무게 624g인 팔각형 금제 술잔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각 면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혹은 춤추는 사람을 새겼다. 곱슬머리와 화려한 옷이 중앙아시아인을 연상시킨다. 손잡이에는 이국적인 얼굴 장식도 있다.
미술사학자들은 굽 부분 연꽃무늬를 근거로 이 유물이 8∼9세기에 제작됐다고 본다. 이와 유사한 금잔이 당나라 수도였던 시안(西安) 하가촌(何家村)에서 출토된 바 있다.
9세기 무렵 당나라에서 만든 금제 술잔이 발견된 곳은 다름 아닌 인도네시아 벨리퉁섬 앞 자바해였다. 1998년 해삼을 캐던 잠수사가 중국 도자기를 찾은 뒤 이뤄진 수중발굴을 통해 약 1천200년 전 난파된 무역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이 아랍 난파선에서는 '20세기 동남아시아 수중고고학의 최고 성과'라는 수식어가 손색없을 정도로 많은 6만7천여 점 유물이 나왔다.
발굴 유물 대부분은 싱가포르 국영기업이 인수했고, 이 기업은 싱가포르 아시아문명박물관에 유물을 기증했다. 그중 189점이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에 전시 중이다.
지난해 12월 개막해 오는 17일까지 이어지는 특별전 '바다의 비밀, 9세기 아랍 난파선'에는 아시아문명박물관에서 가져온 진귀한 금속공예품과 도자기, 선원들이 사용한 생활용품이 공개됐다.
박예리 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3일 "무역선은 인도네시아어로 '검은 바위'를 뜻하는 바투히탐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이곳은 예부터 산호초가 널리 분포해 큰 배가 항해하기 힘들었다고 전한다"고 설명했다.
박 연구사는 "난파선과 무역품들은 바닷속 17m 지점에서 고운 모래에 덮인 채 비교적 잘 보존돼 있었다"며 "선체는 좌현 쪽으로 무너졌고, 화물도 대부분 좌측으로 흩어져 있었다"고 덧붙였다.
난파선은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출항 시기는 '보력(寶曆) 2년 7월 16일'이라는 명문이 남은 도자기를 근거로 826년 이전으로 확인됐다. 보력은 당나라 13대 황제인 경종(재위 824∼826)의 연호다.
배에 탑승한 선원의 국적은 다양했다. 목이 좁고 긴 항아리인 암포라와 유리병은 아랍인과 인도인이 사용한 물품이고, 주사위·벼루·향로는 중국 상인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난파선에는 중국 각지에서 만든 산물이 실렸다. 그중 금속공예품은 30여 점이 육지로 올라왔다. 오랫동안 해저에 가라앉아 있었음에도 보존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전시에서 선보이는 금제 접시는 금제 술잔만큼이나 아름답고 황홀하다. 만(卍) 자와 꽃, 나비, 리본 무늬를 새긴 접시 1점과 오리와 꽃문양으로 장식한 접시 1점은 당대 문화 수준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염소 두 마리가 넝쿨무늬 속을 뛰노는 모습이 인상적인 은제 도금 그릇, 원앙과 모란꽃 무늬를 빽빽하게 새긴 은제 도금 병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박 연구사는 "금속공예품 생산지는 장쑤성 양저우(揚州)와 허베이성, 저장성 등지로 추정된다"며 "아랍 난파선에서는 은괴 18점과 청동거울 29점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형형색색 도자기는 전시의 주인공이라고 할 만하다. 그중 가장 이색적인 도자기가 초록색 유약을 발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한 녹유(綠釉)자기다.
당나라 시기 백색 바탕에 녹색·갈색·남색 유약을 사용한 자기인 '당삼채'(唐三彩) 계열로 분류되는 녹유자기는 형태도 다채롭다. 호리병에 나팔 모양 다리와 뱀 모양 손잡이를 붙인 병, 손잡이와 주둥이를 각각 고양이와 용 모양으로 만든 주전자, 오리·거북·물고기 장식이 달린 잔이 감탄과 흥미를 자아낸다.
난파선에서 발굴한 청화백자는 학술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성과였다. 기존에는 백자에 푸른색 무늬를 그린 청화백자가 14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고 알려졌으나, 9세기에도 존재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청화백자는 서아시아인 취향을 반영해 이슬람식 종려나무 잎과 마름모 무늬로 채운 점도 독특했다.
이는 이미 그 당시에 이른바 OEM 방식으로 주문자 생산이 이뤄졌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박 연구사는 "잎이 부챗살처럼 퍼진 종려나무는 서아시아에서 흔한 나무"라며 "원나라 이후 발전하는 본격적 청화백자에 비해 저화도(低火度)에서 만들어졌지만, 9세기 전반에 서아시아 청화 안료가 중국으로 전래했음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종려나무 잎 무늬는 후난성 창사(長沙) 지역에서 생산한 도자기인 '장사요'(長沙窯)에도 적용됐다. 장사요 중에는 시구를 적거나 그림을 그린 낭만적인 찻잔도 있다.
이귀영 해양문화재연구소 소장은 "이번 전시에서는 9세기 해상 실크로드에서 바닷속으로 사라진 난파선과 침몰 과정에서 최후를 맞이한 선원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며 "천 년 동안 바다가 품은 예술품을 감상하며 각 나라가 공유한 문화를 느끼기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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