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하노이 결렬 원인 분석…"서로 양보 기대하며 수용불가 요구"
"실무협상서도 뚜렷한 시각차 못좁혀…결렬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
(워싱턴·뉴욕=연합뉴스) 이준서 백나리 특파원 = 2차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배경을 두고 외신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서로의 양보에 기대를 걸고 오판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실무협상에서부터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협상가를 자임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올인'을 압박하고 직접 담판을 노려온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따른 제재 해제로 맞서며 서로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를 하다 회담 결렬이라는 파국을 맞았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정상회담에 관여한 당국자 6명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오판이 나쁜 베팅으로 이어졌다"고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사항은 역대 미국 행정부에서 북한의 반대에 부닥쳤던 내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시설을 포기하면 대북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북한의 경제발전을 이끄는 내용이다. 미국의 한 당국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크게 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을 비롯한 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진들은 일괄타결 방식의 비핵화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로 봤지만, 자신을 능숙한 협상가로 자평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 위원장 또한 오판한 것으로 보인다.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핵심적인 제재조항들을 해제하자는 요구는 미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실무협상부터 북미의 뚜렷한 시각차는 좁혀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실무협상에서 노후화된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로는 제재 완화가 어렵다는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고, 정작 북한 협상팀은 '오직 김 위원장이 결정할 사안'이라며 영변 핵시설 내부의 어떤 시설을 해체할지에 대해서도 일관성이 없었다고 NYT는 전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김정은 위원장이 전용 열차에 올라 베트남으로 향한 시점까지도 실무협상은 교착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정상회담에서 '영변 카드'를 내세워 5건의 대북제재를 해제해달라고 요구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일괄타결로 맞섰다는 것이다.
NYT는 "결국 과도한 자아(ego)가 나쁜 베팅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날 '핵 협상은 정상회담 이전에 좌초했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에서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몇 주 전부터 결렬을 예고하는 틀림없는 징후들이 있었다"며 결렬은 사실상 예고된 수순이나 다름없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회담을 강행하지 않는 게 통상적인 외교 관행이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상호 우호적인 관계를 내세우며 상대방의 과감한 결단과 양보에 기대를 걸고는 양측 모두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WSJ은 묘사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측에 더 과감하게 나설 것을 요구했다. 김 위원장에게 '올인'하도록 독려했다"고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다. 김 위원장 역시 미국으로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들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의 전직 당국자는 "두 지도자의 개인적 친분만으로 좁히기에는 북미의 간극이 너무 컸다"면서 "최소한 부분적으로라도 정상회담 이전에 해결됐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CNN도 익명의 당국자를 인용해 "김 위원장은 '백업 플랜'이 없었다"면서 "선언문에 서명할 것으로 매우 자신 있게 기대하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고 전했다.
미답의 영역이었던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로 일부 유엔 제재 해제를 얻어낼 수 있다고 계산한 셈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측의 해제 요구가 사실상 유엔 제재의 핵심에 대한 것이라면서 전면 해제 요구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 국무부 고위 당국자도 회담 결렬 후 브리핑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더 통 크게, 올인하라"고 김 위원장에게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영변과 같은 개별 핵시설에 머무르지 말고 완전한 비핵화에 해당하는 조치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현 시점에서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을 꺼린다는 점을 딜레마로 거론해 WMD와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전면적 조치가 미국의 요구였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nari@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