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밥 먹는 것'부터 시작한 박용곤 명예회장…두산 첫업무는 공장청소

입력 2019-03-04 12:13   수정 2019-03-04 13:56

'남의밥 먹는 것'부터 시작한 박용곤 명예회장…두산 첫업무는 공장청소
23년간 써 내려 간 '사부곡'…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도 유명

(서울=연합뉴스) 김준억 기자 = 3일 별세한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은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장남이었지만 남의 밥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고인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1960년 4월. 두산그룹이 아닌 한국산업은행에 공채 6기로 입행했다.
이는 "남의 밑에 가서 남의 밥을 먹어야 노고의 귀중함을 알 것이요, 장차 아랫사람의 심경을 이해할 것이다"라고 강조한 선친 박두병 초대회장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고인은 3년 동안 산업은행 생활을 마치고 1963년 4월 동양맥주에 입사해 두산그룹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룹 회장의 장남이었지만 말단 사원으로 시작했다. 고인의 첫 업무는 공장청소와 맥주병 씻기였다고 한다.
사원부터 시작한 고인은 선진적인 경영을 잇달아 도입하며 경영인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했고 한양식품과 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쳐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1985년 동아출판사와 백화양조, 베리나인 등의 회사를 인수하며 사업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1990년대에는 시대 변화에 발맞춰 두산창업투자, 두산기술원, 두산렌탈, 두산정보통신 등의 회사를 잇달아 설립했다. 앞서 1974년에는 연합뉴스의 전신인 합동통신 사장에 취임해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가정에서의 모습에 대해 유족들은 "아내에 대해 평생 각별한 사랑을 쏟은 남자"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부인 고 이응숙 여사와는 1960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 여사는 1996년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박 명예회장에게 있어 인생의 '동반자'이자 '조언자'였다고 한다.
박 명예회장은 암 투병 중이던 부인의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병구완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찍 떠나보낸 아내를 한결같이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23년간의 '사부곡((思婦曲)'을 써내려 왔다.
선친에게서 겸손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박 명예회장은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해진다.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살아, '수분가화(守分家和)'를 가훈으로 삼았고,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면서 분수에 맞는 삶을 강조했다고 한다.
재계에서 고인은 모든 사람이 인정할 정도로 과묵한 성품으로 유명하다. 생전에 말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고인은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됩니다. 또 내 위치에서 무슨 말을 하면 그 말은 모두 약속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말을 줄이고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말아야죠"라고 설명한 바 있다.
과묵했지만 소탈하고 다정한 성품을 드러내는 일화들도 적지 않다.

두산그룹 면접 시험장에서 고인은 지원자에게 부친의 직업을 물었고, '목수'라는 답변을 듣고는 '고생하신 분이니 잘해드리세요'라며 등을 두드려줬다고 한다. 당시 지원자는 중견 간부로 성장했으며, 그때의 기억을 잊은 적이 없다고 한다.
박 명예회장은 직접 차를 몰고 회사로 출근한 적도 있었다. 운전기사가 아파서 결근했던 것이다.
당시 주차장에서 이 광경을 본 직원의 보고에 사무실은 난리가 났지만, 박 명예회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조용히 집무실로 들어갔다. 그 운전기사는 선대 때부터 일을 맡아 박 명예회장과도 40여 년을 함께 했다.
고인은 야구에 대한 각별한 사랑으로도 유명하다. 한국프로야구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 'OB 베어스'를 창단했고, 어린이 회원 모집, 2군 창단에도 가장 먼저 나섰다.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 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 17일 77세 희수연 때 자녀들로부터 등 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선물 받았다.
박 명예회장은 어린 시절에도 검소했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 집안이 큰 포목상을 하는데도 무명옷을 색이 바랠 때까지 입었고 고무신도 닳아서 물이 샐 때까지 신었다.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 다닐 때는 급우들을 위해 어머니가 챙겨준 도시락을 한 가방씩 들고 등교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인은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과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1984년 은탑산업훈장, 1987년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justdust@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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