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정부-한유총 치킨게임에 볼모 된 유아·학부모

입력 2019-03-04 16:26  

[연합시론] 정부-한유총 치킨게임에 볼모 된 유아·학부모

(서울=연합뉴스)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예고한 대로 일부 사립유치원이 '개학연기 투쟁'에 들어갔다. 한유총의 발표와 달리 참여 유치원 수가 예상보다 적은 데다, 정부가 긴급돌봄서비스를 제공해 우려했던 만큼 '보육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체 사립유치원의 6% 정도가 이번 '개학연기 투쟁'에 참여했다. 당초 개학연기를 하려던 유치원 중 당국의 설득과 부정적인 여론 때문에 개학연기를 철회한 곳도 있었고,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의 대부분이 자체 돌봄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나 개학을 연기한 유치원 원아의 부모들은 주변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 등 긴급돌봄 시설로 직접 데려다주느라 커다란 불편을 겪었고, 자체 돌봄 서비스를 하는 유치원들도 일부는 등원 버스를 운영하지 않아 학부모들이 애를 먹었다. 낯선 시설로 가야 하는 아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문을 연 곳에 다니는 유아들의 학부모도 언제 유치원이 문을 닫을지 몰라 가슴을 졸이고 있다.

큰 보육 대란 없이 이 정도에 그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 없이는 똑같은 사태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양측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은 사립유치원의 '사유재산성' 인정 여부이다. 한유총은 공교육에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쓰고 있으니 시설사용료를 인정해 달라는 것이고, 정부는 유치원 설립자가 자발적으로 설립기준에 따른 시설과 설비를 갖추고 사유재산을 유치원 교육 활동에 제공한 것인 만큼 시설사용료를 따로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립 초·중·고교와의 형평성 문제도 있는 데다, 이미 비영리 교육기관인 '학교'로 인정받아 취득세와 재산세 감면, 소득세 면제, 부가가치세 면제 등의 세재 혜택이 제공되는 만큼 별도로 시설사용료를 지급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한유총이 집단행동을 강행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도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문을 닫은 유치원에 시정명령을 내렸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할 예정이다. 5일에도 개학하지 않을 경우 형사고발 할 방침이다. 서울교육청은 '공익을 해하는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개학연기 투쟁'을 주도한 한유총의 설립허가를 취소할 계획이다. 이대로 계속 평행선을 달린다면 사태는 해결될 수 없다.

이번 '개학연기 투쟁'은 지나친 실력행사이며 명백한 학습권 침해이다. 한유총은 아이들을 볼모로 사익을 추구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사립유치원이 비영리 교육기관인 '학교'라는 전제에 대한 공감 없이는 대화할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한유총이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한 번도 대화에 응하지 않았다고 계속해서 주장하는 만큼 정부도 어느 정도는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양측이 한발씩 물러나 진지한 대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유아와 학부모를 볼모로 한 한유총의 집단행동부터 철회돼야 한다. 양측의 치킨게임으로 유아교육 자체가 흔들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유아와 학부모이다. 차제에 유치원의 공공성 강화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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