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대교 들이받은 러시아 화물선에 도선사 탔더라면

입력 2019-03-05 13:13   수정 2019-03-05 18:51

광안대교 들이받은 러시아 화물선에 도선사 탔더라면
용호부두 대형선박 수시 이용하는데도 '강제도선' 구역 제외
북항 등은 선장 대신 한국인 도선사가 조종…부산해수청 강제도선 구역 확대 검토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러시아 화물선이 광안대교를 충돌한 사고를 계기로 용호부두를 이용하는 선박에도 한국인 도선사를 의무적으로 태우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부산해양수산청 등에 따르면 부산항 경계 안에 있는 용호부두와 다대포항은 강제도선 구역에서 제외돼 대형 화물선들이 도선사를 태우지 않고도 입·출항할 수 있다.
반면 북항과 신항을 이용하는 500t 이상 외국적 선박, 2천t 이상 한국 선박은 반드시 도선사를 태워 도선사에게 해당 선박의 조종을 맡겨야 한다.

부산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도선사들이 선박을 조종함으로써 사고를 예방하기 조치이다.
용호부두는 1천t 이상 선박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데도 이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아 선장이 판단에 따라 도선사를 태우지 않아도 된다.
지난해 용호부두를 이용한 선박은 모두 176척이었고, 그 가운데 1천t 이상은 134척에 달했다.

용호부두에서 하역을 마치고 출발해 광안대교를 들이받은 러시아 화물선 씨그랜드호는 총톤수 5천998t 규모다.
이 선박은 한국인 도선사를 태우지 않고 용호부두를 떠나 목적지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정상 항로를 벗어나 엉뚱한 곳으로 가는 바람에 광안대교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항만 관계자들은 "한국인 도선사가 타서 배를 조종했다면 광안대교 충돌 같은 사고는 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항 도선사회 관계자는 "과거 용호부두는 작은 배들만 이용해 강제도선 필요성이 없었지만, 최근에는 3천∼6천t급 화물선이 자주 드나들고 방파제도 더 길어져 항로가 바뀌는 등 여건이 이전과 달라졌다"며 "이 때문에 씨그랜드호 같은 사고가 재발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씨그랜드호는 용호부두에서 출항하는 과정에서 예선을 이용했지만,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예선은 대형선박을 끌거나 밀어서 부두에 접안시키거나 접안 선박이 부두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를 말한다.
덩치 큰 배들은 자력으로 미세하게 방향을 조정하는 게 어려워 예선들이 이를 도와줘야 하며, 그 과정에서 해당 선박을 조종하는 선장 등과 예선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현행 부산항 예선운영 세칙은 부두에 이·접안하거나 계류하고자 하는 1천t급 이상 선박은 항만시설 보호와 선박 안전을 위해 예선을 사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도선 대상 선박 가운데 이·접안 보조장비를 설치한 선박은 도선사가 선장과 협의해 자율적으로 예선 사용 여부를 정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씨그랜드호에 한국인 도선사가 탔더라면 예선들과 소통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해양수산청은 임시방편으로 4일 오후 6시부터 3개월간 1천t급 이상 선박의 용호부두 입항을 금지하고, 강제도선 구역을 확대하는 등 근본 대책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5일 오후 부산시, 해경, 도선사회 등 해운항만 관련 단체 등이 참석하는 긴급대책회의를 열고 강제도선 구역 확대, 예·도선 면제규정 개선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lyh9502@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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