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 한국관 전시, '젠더 다양성'으로 역사 다시 쓰기
김현진 감독 "비판적 젠더의식 통해 풍요로운 시각 서사 구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올해 5월 초 개막하는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미술전 한국관 주제는 2017년 출간된 소설 '파친코' 첫 문장을 빌려왔다.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이 집필한 '파친코'는 재일동포 4대가 겪은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에 굴종하지 않고, 균열과 분투를 두려워하지 않는 다양한 주체가 주인공입니다. 지난 세기 동아시아 근대화 역사에서 감춰지고 잊히고 버림받거나 비난 대상이었던 이들을 새로운 서사 주체로 조명하려 합니다."
한국관을 총괄하는 김현진 예술감독과 남화연·정은영·제인 진 카이젠 작가는 5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 기자간담회를 통해 작업의 얼개를 공개했다.
남화연 작업은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코스모폴리탄 안무가' 최승희(1911∼1967)를 전시장으로 불러낸다. 작가는 최승희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식민과 냉전, 근대화, 국가주의를 벗어나려 한 근대 여성의 삶과 예술을 재구성한다.
이제는 스러지다시피한 여성국극을 10여년간 조명한 정은영은 2세대 배우 이등우의 삶을 기록하면서 트렌스젠더 전자음악가 키라라 등 퀴어공연 계보를 잇는 퍼포머 4명의 공연 미학을 조명한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에서 자란 제인 진 카이젠은 바리 설화를 파고든다. 부모를 위해 희생된 딸이 부모를 구하고 신이 되는 내용의 설화는 동아시아 근대화가 야기한 문제를 반성하고 이를 탈주하는 가능성의 신화로 해석된다.
세 작업 주인공은 시대도 배경도 다르지만, 남성 중심 역사(History) 억압과 시련에도 '그래도 상관없다'며 당당히 맞선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감독은 "동시대 시각예술 활동은 비판적 젠더 의식을 통해 서구·남성 중심 범주를 더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라면서 "이를 통해 한층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시각 서사가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세 작업이 어우러지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전시 핵심 매체는 비디오다. 몸과 춤, 굿, 움직임, 안무, 리듬 등 다양한 퍼포먼스 요소를 통해 감각적인 오디오비주얼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작품간 사운드 간섭을 피하면서도 젠더 다양성을 상징하는 유선형 건축 구조물은 건축가 최춘웅이 함께 만든 작품이다.
랠프 루고프 총감독이 '흥미로운 시대에 살아보길'(May You Live in Interesting Times)이라는 주제로 기획한 본전시는 5월 11일 베네치아 자르디니 공원 및 아르세날레 일대에서 개막한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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