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보고서 발표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전 세계에서 여성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중 하나이자 양성평등이 가장 잘 정착된 것으로 꼽히는 북유럽 덴마크에 사실은 성폭력을 정당화하고 경시하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5일(현지시간)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덴마크의 성폭행 피해자들과 전문가, 관련 당국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이날 발표한 보고서에서 덴마크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미 달성됐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지만,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강간문화'가 만연해 있다"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강간문화'는 성폭행을 정당화하고 성폭력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사회적 환경, 문화를 뜻한다.
이 단체는 보고서에서 "덴마크에서는 양성평등이 이미 달성됐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지만 이 때문에 오히려 성폭력에 관해 이야기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덴마크에서 성폭행 사건은 종종 신고조차 되지 않으며, 신고가 이뤄지더라도 기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 큰 영향을 미친 요인은 피해자들이 흔히 성폭행을 신고하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무시,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태도, 성 고정관념과 성폭행에 관한 통념 때문에 나타나는 편견 등"이라고 보고서는 짚었다.
보고서는 또 덴마크 법에서 성폭행의 정의를 '동의하지 않은 관계'가 아니라 '물리적 폭력이나 강압 혹은 피해자의 불능 상태에서 이뤄진 관계'라고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이에 따라 성폭행의 법적 정의를 고치고, 경찰관들과 변호사들에게 교육을 제공해 이들이 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2차 가해를 저지르는 것을 방지할 것을 덴마크 정부에 권고했다.
지난 2017년 덴마크 법무부가 집계한 성폭행이나 성폭행 미수 사건은 5천100건이었다. 그러나 남덴마크대학은 이 수치가 최대 2만4천건에 이를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하지만 같은 해 덴마크 수사당국이 접수한 성폭행 신고는 890건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기소된 사건은 535건이었으며 이 중 94건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쿠미 나이두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은 덴마크에선 성폭력이 처벌되지 않는 사례가 충격적으로 많고, 관련법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구식이라며 "오래된 법을 비롯해 피해자를 비난하는 등의 잘못된 문화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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