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아니에요?"…들뜬 외국인 관광객들, 미세먼지 무방비

입력 2019-03-07 09:01  

"안개 아니에요?"…들뜬 외국인 관광객들, 미세먼지 무방비
안내 못 받다 보니 '맨얼굴'로 거리 활보…"문자 왔는데 한국어 이해불가"
관광안내소 "'미세먼지' 안내는 따로 안 해"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이게 전부 다 스모그(smog)라고요? 저는 그냥 안개가 많이 낀 줄 알았어요."
6일 서울 경복궁 앞 매표소에서 만난 러시아인 관광객 갈리나 가자코프츠바(41) 씨는 '서울의 미세먼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자 놀란 눈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렇게 답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미세먼지 공습이 연일 이어지고 있지만 값진 휴가를 내고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제대로 된 안내를 받지 못해 미세먼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였다.
가자코프츠바 씨처럼 기자가 도심 관광지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미세먼지를 단순히 안개가 많이 끼었다거나 구름 수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어제저녁 한국에 왔다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딜런 힐(50) 씨는 미세먼지에 관해 질문을 받자 "그냥 날이 흐려서 구름이 많은 줄 알았다"면서 "경보까지 발령할 정도로 서울 공기가 안 좋은 줄은 몰랐다. 마스크는 어디서 파느냐"고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태국 방콕에서 가족들과 여행 온 칸타메 아라시라왓(29) 씨도 "한국에 도착하고 나서도 미세먼지와 관련된 안내는 전혀 받지 못했다면서도 "방콕도 공기가 나빠 이 정도면 심한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휴대전화로 미세먼지 관련 문자를 받기는 했지만, 한국어를 모르는 탓에 그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는 반응도 나왔다.
남자친구와 서울을 찾은 홍콩 출신의 라우만팅(25) 씨는 서울에 며칠 전부터 미세먼지 저감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았냐고 묻자 "전혀 몰랐다. 알려 주는 사람이 없었다"며 "어제 휴대전화에 안내문자가 오긴 했는데 한국어를 몰라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에서 대학 친구들과 여행을 온 아우구스토 노브리(24) 씨는 뒤늦게 공기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마스크를 구매해 코와 입을 가렸다.
그는 "서울에 도착해서야 공기가 안 좋은 것을 알고 편의점에서 급히 마스크를 사서 일행과 나눠 썼다"며 "미세먼지가 심하긴 하지만 맛있는 길거리 음식도 많고 볼거리도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일부 관광객들은 짙게 깔린 서울의 미세먼지를 접하고서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한복을 차려입고 여동생 두 명과 사진을 찍던 일본인 관광객 다나카 카나(24) 씨는 "오늘 아침 서울에 도착해서 하늘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서 아쉽다"고 울상을 지었다.
오사카 출신인 다나카 씨는 "한국에 오기 전 트위터에 올라온 흐릿한 서울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이 정도로 심할 줄은 몰랐다"며 "일본에서는 마스크를 쓰고 다닐 정도로 공기가 안 좋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런던에서 아내와 함께 관광을 온 크리스 쿠알레스(35) 씨는 두꺼운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채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다.
그는 "서울은 멋진 산과 현대적인 건물이 많은 도시인데, 짙은 미세먼지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어 아쉽다"며 "나야 며칠 머물다 가니 상관은 없지만, 계속 이런 환경에 노출되면 건강에도 분명히 해로울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중구 명동 거리도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며 인파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대로변에 있는 음식점과 카페는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고, 중국대사관 근처 환전소에는 긴 줄이 생겼다.
하지만 줄줄이 미세먼지 마스크를 쓴 내국인과 달리 미세먼지를 피하려는 관광객 모습은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있는 외국인이 특이한 경우로 받아들여졌다.
명동 관광안내소 관계자는 "따로 미세먼지와 관련해 안내하고 있지는 않다"며 "남산 서울타워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미세먼지 때문에 낮에 가도 경치를 보기 어렵다'고 안내해주는 정도"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주일 가까이 미세먼지 저감 조치가 내려졌지만, 명동을 찾는 외국인 규모는 평소와 비슷하다. 따로 미세먼지와 관련해 문의해오는 사람도 없다"고 덧붙였다.
juju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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