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민주의거 주도 박제구 당시 대전고 학도호국단 대대장
(대전=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학원에 자유를 달라", "학생을 정치 도구화 말라"
자유당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60년 3월 8일 오후 대전 시내를 쩌렁쩌렁 울린 구호들이다.
부정선거의 대명사인 3·15 정·부통령 선거를 1주일 앞두고 당시 대전고 1학년(41회 졸업)과 2학년(40회 졸업) 학생 1천여 명은 학교 밖으로 뛰쳐나와 이들 구호를 외치며 '자유민권 수호'를 부르짖었다.
수업 중간에 이승만 대통령 연설을 방송하는 등 학원 정치화에 불만이 팽배하던 중 대구 2·28 민주화운동 소식을 접한 일부 학도호국단 간부들이 중심이 돼 거사를 일으킨 것이다.
애초 민주당 부통령후보 장면 박사 연설회에 맞춰 대전고뿐 아니라 대전지역 모든 고교가 시위에 나서기로 했으나 정보가 새는 바람에 다른 학교 참여는 무산됐다.
대전고 학도호국단 대대장으로 시위를 주도했던 박제구(당시 2학년) 씨는 "각 학교 학도호국단 간부들에게 8일 정오 YMCA에서 모이자고 연락했는데 가보니 다른 학교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못했다"라며 "우리 간부들도 교장 사택에 감금돼 있다 겨우 빠져나와 다른 학생들을 이끌고 거리로 뛰쳐나갔다"고 회상했다.
학생들은 장면 박사 연설회장인 대전공설운동장 주변을 비롯해 시내 전역에서 시위를 벌였다.
진압에 나선 경찰이 휘두른 소총 개머리판 등에 수많은 학생이 다쳤고 80여 명이 연행됐다.
이틀 뒤인 3월 10일에는 대전상고 학생 600여 명이 시위를 이어갔다.
충청권 최초 학생운동이며 대전지역 민주화 운동 효시인 이들 시위는 대구 2·28 민주화운동, 마산 3·15 의거와 함께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3·8 민주의거를 일으킨 후배들의 의분은 선배들에게도 자극이 됐다.
손중근, 이기태(이상 36회 졸업), 고병래(37회 졸업) 씨가 4·19 혁명에 앞장섰다 안타깝게 숨진 것이다.
4·19 혁명 당시 같은 고교 출신 선·후배가 3명이나 숨지기는 대전고가 유일하다.
대전고 교정에는 이들을 기리는 현정탑이 3·8 민주의거 기념비와 함께 세워져 있다.
3·8 민주의거를 주도했던 박제구 씨는 김영삼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30년 넘게 불순분자로 낙인찍혀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박 씨는 어느덧 팔순을 앞두고 있지만 "39년 전처럼 부패한 상황이 다시 벌어진다면 똑같이 정의를 부르짖을 것"이라며 "더 멋지고 힘차게 민주주의를 외치겠다"고 말했다.
3·8 민주의거는 지난해 10월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오는 8일 오전 10시 대전시청 남문광장에서 국가보훈처 주관 기념식이 열린다.
이 자리에는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한 이낙연 국무총리를 포함해 정부 주요 인사와 의거 참여자, 시민 등 1천500여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기념식 후에는 시청 둘레길 1.1㎞를 배경으로 출정식과 가두행진, 시위 진압 등 재연행사도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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