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빨간 색 립스틱을 짙게 바르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데다 평소에 입던 편한 옷차림으로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간다?"
짙은 색 정장에 적당히 화장을 한 단정한 용모. 구직활동을 하는 일본 새내기 졸업생들의 획일적인 복장과 용모에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얼굴채용(顔採用)'에 반기를 드는 기업이 늘고 있어서다. 응시자들도 크게 반기는 분위기다.
'얼굴채용'은 채용면접 등에서 '용모'로 채용여부를 결정하는 걸 가리키는 용어다. 당사자의 학력이나 자격, 이력 등을 꼼꼼하게 평가하기 보다 용모가 채용에 큰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해당 기업들은 부인하지만 대기업과 방송국 등에 상대적으로 용모가 좋은 사원이 많은 건 얼굴채용의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몇년전 일본의 한 민간방송국이 실시한 실험에서는 총리 이름을 틀리게 말하는 등 면접에서 엉뚱한 실수를 많이 했는데도 용모가 준수한 응시자가 합격하는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얼굴채용을 시작합니다"
고등학교와 대학 졸업 예정자들의 취업활동이 본격화하고 있는 요즘 '키스미(KISSME)' 브랜드 화장품 메이커인 이세한(伊勢半)이 반어법으로 이런 도발적인 채용공고를 내 SNS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고 NHK가 6일 보도했다.
"요즘 시대에 `무슨 헛소리야 '하는 생각으로 들어가 봤는데 정말 대단하다"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그동안의 취업활동 스타일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구직자들의 평소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물론 용모로 판단한다는게 아니다. 취업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중요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랐다". 종업원 350여명인 역사깊은 화장품 메이커 이세한 홍보담당자의 설명이다. 틀에 박힌 구직 스타일에 속박당하지 말고 각자의 개성을 표현해 달라는 기업 측의 '바람'을 '얼굴채용' 광고에 담았다고 한다. 이 회사는 올해 신입사원 채용부터 면접 때 자유화장과 자유복장으로 응해 달라고 요청했다. 물론 전혀 화장을 하지 않은 민낮도 환영이다.
입사지원서는 인스타그램으로 '자기만의 특성'을 테마로 한 사진이나 동영상 투고로도 받기로 했다. "당신의 진짜 모습과 만나고 싶다"는게 회사 측의 바람이다. 이세한의 시도는 채용방식의 일대 전환이 아닐 수 없다. 기존 채용방식은 학생들이 '자기만의 특성'을 억제하는 것이었다는 반성에서 비롯된 변화다. 올해 1월 전국 대학생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구직시 화장과 복장에 대해 물은 결과 절반 이상이 '부자유스러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면 '평소의 화장과 복장으로 취업활동을 하고 싶다'고 답한 사람도 절반에 달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건 '얼굴채용' 공고에 예년의 배에 달하는 응시자가 몰렸다고 한다. 자기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지원서에 재학시절 몰두했던 서클활동 사진을 첨부하는 사람도 있다. 면접은 4월 이후에 실시할 예정이다.
일찌감치 면접복장을 자유화한 기업도 있다. 히로시마(廣島)현에 본사를 두고 있는 식품산업기기 종합메이커 '사다케'는 8년 전부터 면접시 복장을 자유화했다. "정장 차림의 구직 복장을 하면 긴장하는 사람도 있어 질문에 대한 답변도 획일적이 되기 쉽다. 좋은 개성을 가진 사람을 찾아내기 어렵다"는 인사부장의 제안을 채택한 결과다. 매년 "평상복", "자기다운 복장", "자기를 빛나 보이게 하는 복장" 등으로 주제를 달리해 취업 희망자들이 "그 테마에는 이게 낫겠다" 싶은 복장으로 면접에 응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무용을 잘하는 학생은 전통복장인 기모노 차림, 아이돌 스타의 팬은 아이돌 응원복을 입고 오는가 하면 수제 블라우스를 입고 오는 등 저마다 자신의 개성을 내세울 수 있는 복장으로 면접에 응해 활기있게 자신을 설명하기 시작한다고 한다.
"살아온 과정은 모두 다르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건 그동안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해 상대에게 전달하는지다. 기업에서는 주위 사람과 같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는지와 그 사람의 '인간성'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갑옷'을 벗고 자기다운 복장으로 이야기하게 하는게 가장 좋다는 걸 실감한다". 이 회사 홍보실장은 복장을 자유화한 배경과 도입후 소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취업정보 사이트 운영업체인 리쿠르트 커리어가 '취직백서 2019'에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면접에서 어필할 항목'으로 아르바이트 경험이 48%로 가장 많았고 '인품'과 '소속 클럽·서클'이 32%로 나타났다. 기업측이 '채용기준으로 중시하는 항목'으로는 '인품'이 92%로 가장 높았고 '아르바이트 경험' 21%, '클럽과 서클은 7%로 나타나 구직 당사자와 기업의 생각이 크게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마쓰모토 젠(?本全) 리쿠르트 커리어 취직미래연구소장은 "기업이 '인품'과 '열정', 향후 가능성' 3가지를 가장 중시하는 경향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학생들은 '뭘 했는지'를 PR하고 싶어하지만 기업은 뭘 했는지 보다 그걸 통해 뭘 배웠는지를 알고 싶어한다"면서 구직복장탈피 추세와 화장품 회사의 도발적인 채용방식 도입도 일률적이 아니라 다면적으로 사람을 보겠다는 생각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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