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n스토리] '불붙이는 마술사'로 변한 소방관

입력 2019-03-10 08:00  

[휴먼n스토리] '불붙이는 마술사'로 변한 소방관
도배·도시락 봉사까지 16년째 이어진 재능기부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불을 꺼야 하는 소방관이 되레 '불 쇼'를 펼치는 마술사로 변신했다.
지난 5일 광주 북구 한 요양원에 소방인형 탈을 쓴 소방관이 등장하자 요양원 어르신들의 이목이 한순간에 집중됐다.
마술 소품을 한 아름 들고 나타난 소방인형 탈의 주인공은 북부소방서 김성철 문흥119안전센터장.
"불이 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드리겠습니다"
김 센터장이 미리 준비한 화약 종이에 불을 붙이고 거센 불길이 일어나자 어르신들은 화들짝 놀랐다.
본업이 소방관답게(?) 가볍게 불을 끈 김 센터장은 곧이어 "문어발식으로 콘센트를 쓰거나 외출할 때 전기장판을 끄지 않으면 이런 불이 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센터장은 불을 이용한 마술뿐만 아니라 물건이 사라지는 마술 등을 선보이며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소방 안전교육을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한 마술이었다.
2012년 한 교회 목사의 초청으로 소방 안전교육을 하게 됐는데, 당시 마술에 관심이 있던 동료에게 두 세가지의 간단한 마술을 배워갔다.
관중들 앞에서 처음으로 하는 마술인 탓에 어설픈 실수를 연발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다음에 마술쇼만 한 번 더 해줄 수 있냐는 요청까지 받을 정도였다.
이를 계기로 김 센터장은 소방 교육에 활용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마술을 배웠다.

사설 학원에 다니며 전문적으로 배워보려 했지만, 당직 근무를 해야 하는 소방관의 특성상 학원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다.
결국 김 센터장은 마술 소품을 사면 동봉된 설명서나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독학으로 기술을 하나씩 터득해 나갔다.
그렇게 8년 동안 요양원과 유치원 등에서 120차례 이상 마술 재능 나눔을 펼쳤다.
사실 김 센터장의 재능 나눔 봉사는 1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센터장은 2004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집에 도배를 해주는 재능봉사를 시작했다.
우연한 기회로 눈이 보이지 않은 한 할머니의 집에 도배하는 봉사활동을 갔다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보람을 느끼고 그 길로 도배 기술을 배우러 학원에 등록했다.
요청이 더는 들어오지 않을 때까지 8년 동안 도배 봉사를 이어갔다.
이후 김 센터장은 독거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에게 전달되는 '사랑의 도시락'에 음식을 담거나 포장하는 도시락 봉사를 시작했다.
김 센터장의 솔선수범에 동료 소방관들도 하나둘 손을 보태기 시작했고, 도시락 봉사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따뜻한 나눔이 알려지면서 김 센터장은 2016년 국민대통합위원회로부터 '생활 속 작은 영웅'으로 선정됐고, 보건복지부로부터 장관상을 받았다.
김 센터장은 10일 "마술을 보면서 좋아하시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보면 보람도 되고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하다"며 "앞으로도 어렵고 외로운 이웃을 위해 소소하지만, 지속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i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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