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정국에 檢특별수사본부 출범…文정부 들어 '적폐청산 수사' 여론
국정원·軍 등 권력남용 '고강도 사정'…장기화에 부작용 우려 목소리도
(서울=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된 지 이달 10일로 2년을 맞는다.
헌정 초유의 대통령 파면과 정권 교체를 불러온 국정농단 사건은 문재인 정부 들어 '적폐 수사'라는 커다란 사정 정국을 조성하는 시발점이 됐다.
탄핵 2년이 되는 시점에 국정농단 사건은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남겨 놓고 있고, 전(前) 정부 시절 국가기관의 조직적 비리를 들춰낸 적폐 수사도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적폐 수사 1호격인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의혹 사건은 박 전 대통령의 탄핵 4개월여 전인 2016년 10월 27일 수사가 공식화했다.
당시 김수남 검찰총장은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해 이영렬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본부를 꾸리도록 지시했다.
최씨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가 언론에 공개된 지 사흘 만이었다.
그로부터 2년 반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검찰은 두 전직 대통령과 전직 대법원장을 구치소에 보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김기춘(80) 전 실장은 구속 중 1심 재판에서 "과거 왕조시대에 망한 정권의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차라리 독배를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이걸 끝내고 싶다"고 한탄을 털어놓기도 했다.
◇ 우병우 '황제소환'에 검찰 불신…'촛불정국' 속 특검 출범
촛불 민심 입장에서 적폐청산 1순위 대상은 다름 아닌 검찰이었다. 검찰로선 국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책임있고 공정한 수사 결과를 내놓아야만 했다.
그러나 2016년 11월 7일 한 조간신문에 팔짱을 낀 채 웃으며 검사실에 서 있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사진이 실리자 검찰을 향한 민심의 분노가 끓어올랐다. 당장 '황제소환'이란 비난이 쇄도했다.
일주일 뒤인 11월 14일 여야는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특검 도입에 합의했다. 특별수사본부가 최씨를 비롯한 주요 관련자 조사를 이미 진행하고 있었지만, 살아있는 정권을 겨눈 수사를 검찰이 공정하게 벌일 수 있을지에 국민들이 강한 의문을 제기한 탓이다.
특별검사로 지명된 박영수 특검은 곧바로 수석 파견검사(수사팀장)로 윤석열 당시 대전고검 검사(현 서울중앙지검장)를 지목했다. 특수통 정예 검사들이 대거 특검에 합류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특검 수사 결과에 박근혜 정부 운명은 물론 검찰의 운명도 달렸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왔다.
◇ 서슬 퍼런 특검 '칼날'…바통 넘겨받은 檢, 박근혜 구속
국정농단 특검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구속기소를 신호탄으로 총 30명을 재판에 넘겼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이 구속기소 됐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등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이 부회장에게는 경영권 승계 작업에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최순실씨 측에 433억원대 뇌물을 수수 또는 약속한 혐의가 적용됐다.
황교안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정농단 특검 연장을 거부하면서 2017년 2월 28일로 특검은 활동을 종료했지만,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수사기록을 인계받아 수사를 이어갔다.
그 사이 헌법재판소는 3월 10일 박 대통령의 파면을 결정했고, 검찰은 탄핵심판 닷새 만인 3월 15일 박 전 대통령에게 소환 일정을 통보했다. 한 달 뒤인 4월 17일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592억원의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사상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의 기소였다.
◇ '윤석열호' 꼬리 무는 적폐수사…MB도 법정에
이어진 2017년 5월 검찰 인사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이었던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했다.
같은 해 8월 최정예 부대로 진용을 갖춘 '윤석열호'는 그해 가을부터 적폐청산 수사를 위해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수사 의뢰 범위가 가장 광범위한 사건으로는 대표적으로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 국정원의 각종 정치공작 의혹 수사가 있었다.
국정원의 수사 의뢰를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별도 수사팀을 꾸려 민간인을 동원한 댓글 공작 등 국정원의 각종 불법 정치공작을 규명했다. 이 수사로 원 전 국정원장을 비롯해 간부 수십 명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밖에도 국정원 사건과 닮은꼴인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개입 의혹, 기무사령부 댓글 공작 의혹, 국정원 특활비 상납 의혹 등 적폐 수사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부 부처가 자체 진상조사를 거쳐 검찰에 수사 의뢰한 사건들도 많았다.
이후 검찰 적폐 수사는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한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에서 다시금 정점에 이른다.
동부지검에 꾸려진 다스 비자금 의혹 전담수사팀의 수사기록을 넘겨받은 중앙지검은 추가 수사를 거쳐 지난해 4월 9일 이 전 대통령을 110억원대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다스 실소유주로서 회삿돈 349억원을 횡령한 혐의도 적용했다.
◇ 수사 장기화에 비판 커져…피의자 투신 등 안타까운 일도
이 전 대통령 기소 후에도 숨 돌릴 틈 없이 적폐 수사가 이어졌다. 이번에는 '사법 적폐'였다.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소 외압으로 불거진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은 사법부가 자체 진상조사로 신뢰할 만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자 결국 '사법농단' 의혹 수사로까지 이어졌다.
검찰은 특수부 인력을 대거 투입해 수사팀을 꾸리고 8개월 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고, 결국 지난달 11일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사법부 수장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재판 등 일선 재판에 개입하고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를 적용했다.
적폐청산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이전 정부에 대한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피로감과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일부에서 나왔다. 권력층 사정에 몰두한 나머지 민생 문제에 역량을 집중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 또한 있었다.
일각에서는 적폐 수사를 두고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내세워 처벌의 부당성을 따지기도 했다.
2017년 11월 국정원의 댓글 수사방해 의혹 수사와 관련해 변창훈 전 서울고검 검사가, 지난해 12월에는 이재수 전 국군 기무사령관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불법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각각 투신해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면서 비판 여론이 고조되기도 했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농단 수사를 끝으로 이전 정부와 관련한 검찰의 대규모 적폐청산 수사는 어느 정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법조계 인사는 "적폐청산은 한국사회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었다"면서도 "적폐 수사가 장기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경제·사회적으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있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