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이카 환경개선·강사파견 지원 후 4대1 경쟁률, 전국 최고 취업률
공립 기술교육 모델로 정착…"성평등 지향, 폴리텍대학 수준 목표"
(동티모르=연합뉴스) 강성철 기자 = "어른이 되면 부모님 의견을 좇아 시집가는 게 다인 줄 알았는데 여성이라고 못할 게 없다는 걸 배웠죠. 한국 유학 후 동티모르 발전을 돕는 저널리스트가 되고 싶습니다."(멜린다·3학년)
"IT 공부를 해보니 가진 게 별로 없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기술인 거 같아요. 대학 공부까지 한 후 공무원이 돼서 한국처럼 IT 강국이 될 수 있도록 정보통신 정책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히뽈리토·3학년)
동티모르 수도 딜리 소재 베코라기술고등학교는 입학 경쟁률이 4대1로 전체 고교 가운데 최고다. 전국 최고 취업률을 자랑하는 명문이다.
평범했던 일반 기술고등학교가 명문으로 성장한 데에는 코이카(KOICA)의 도움이 컸다.
코이카는 공립 기술교육의 역량을 키우고 교육환경을 개선해 인재를 양성하는 시범학교로 베코라기술고를 선정해 2013년부터 3년간 900만 달러(약 102억원)를 투입했다.
시설을 리모델링하거나 증축하고 학교 운영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교육 커리큘럼과 교재를 개발했다. 또 교원 연수를 실시하는 한편 지금까지 매년 5∼6명의 봉사단 강사와 자문단을 파견해 선진 교육을 하고 있다.
9일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은 서툴지만 한국어로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이 학교에는 봉사단 강사가 가르치는 한국어 과목도 개설돼 있다.
IT, 기계, 전기, 전자, 건축, 자동차 학과 등에서 1천여 명이 배우는데 올해는 신입생을 150명 더 뽑았다. 교실 부족으로 2·3학년은 오전 수업을 하고 1학년은 오후 등교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치솟는 입학 경쟁률과 지역 학부모들의 열화같은 요청에 교실 부족을 무릅쓰고 신입생 정원을 늘린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 여학생 비율이 다른 고교보다 배 이상 높다는 점이다. 여성 인권이 낙후한 이곳에서는 교육에서도 소외돼 남녀 성비가 9대1 또는 8대2 수준이다.
베코라기술고는 여학생 비율이 30%를 넘어섰고 꾸준히 늘고 있다. 코이카는 이전까지 남녀 공용이던 화장실을 따로 분리했고 여학생 휴게실과 양호실도 마련했다. 남녀 차별 없는 사회 구현은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중장기적으로 학교가 중심이 돼 지역 사회의 젠더 이슈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다.
봉사단원으로 기계과에서 컴퓨터 3D 캐드를 가르치는 남궁혁 교사는 "실력양성도 중요하지만 큰 꿈을 꾸라고 가르친다"며 "대학 진학을 하거나 외국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밝혔다.
교사들은 한 반에 30∼40명인 학생에게 실기이론 수업과 실습교육을 병행해 가르친다. 올해부터 학년에 따라 오전·오후로 나눠 가르치다 보니 쉬는 시간 없이 5∼6교시 수업을 이어서 진행한다.
학생들은 수업이 종료되면 급히 화장실로 뛰어가거나 싸 온 간식을 우물우물 급하게 먹고는 다음 수업을 듣는다.
남 교사는 "고된 환경이지만 교사는 사명감에, 학생들은 가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라는 절박함에 수업 열기만은 어느 학교보다 뜨겁다"고 자랑했다.
KAIST 석사 출신으로 반도체 기업 부사장을 지낸 이강완 자문단은 "3학년이 되면 기업체나 정부 기관으로 실습 파견을 보내 졸업 전에 현장 경험을 익히게 하지만 경기가 워낙 안 좋다 보니 취업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베코라기술고는 졸업생 가운데 40%가 동티모르국립대를 비롯한 대학에 진학한다. 20%는 현지 기업에 취업하고 10%는 한국 등 외국인 노동자로 해외 취업을 한다. 나머지 30%의 졸업생은 진학·취업 재수를 한다.
경기 침체로 동티모르국립대 졸업생 취업률이 10%에 못 미치는 것에 비교하면 놀라운 성과다.
19년째 아이들을 가르치는 두아르떼 교감은 "코이카 도움 덕분에 명문으로 인식되면서 입학 희망자가 늘고 있다"며 "대부분 목표의식도 있는 아이들인데 다 받아들이기에는 시설도 교사도 부족한 상황"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미경 이사장은 8일(현지시간) 타우르 마탄 루왁 동티모르 총리와의 면담에서 베코라 졸업생의 해외 취업을 늘리기 위해 교육의 고도화를 지속해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의 기술전문대학인 폴리텍대학 수준으로 학교를 승급시켜 졸업 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파견 보낼 수 있도록 추진해보자고 제안했다.
이에 루왁 총리는 매년 성년이 된 1만5천여명의 청년이 노동시장에 나오지만 국내외 기업이 요구하는 실력을 갖추지 못해 취업에 고전하고 있다며 베코라기술고의 성공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동티모르는 매년 300∼400여 명을 한국에 외국인노동자로 보내 총 2천여명이 한국의 다양한 산업현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졸업했지만 한국어 수업을 들으려고 학교를 나오는 조아니니야 씨는 "한국어능력시험을 통과해 한국에 외국인노동자로 갈 계획"이라며 "열심히 벌어서 동생과 친척들이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코이카 관계자는 "수도 딜리에서조차도 여학생 중퇴율이 40%를 웃돌 정도로 열악한데 베코라기술고가 동티모르 기술 입국의 기초를 다지면서 동시에 양성평등의 모범학교가 되도록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wakar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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