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미술관 기획전 '거짓말', 현대미술의 예술적 기만 소개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빛이 없는 밤 냇가에서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비스듬히, 신체가 반쯤 잠길 만큼 땅을 파고 그 안에 눕되……' '다만 힘을 빼고, 물의 온도와 흐름에 발의 체온과 자세, 움직임 등을 맡긴다'
서울대미술관에 진열된 책 '변신술'에 실린 '냇물이 되는 법'이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하겠지만, 책은 태연한 얼굴로 각종 지침을 일러준다.
미술가 김범이 저술한 '변신술'은 인간이 냇물뿐 아니라 나무, 풀, 사다리, 표범, 에어컨 등으로 변신하는 방법을 담았다. 황당무계함을 인내하며 책을 읽다 보면, 지침대로 실행해 참과 거짓을 따지고픈 욕망, 존재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지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 등이 꼬리를 문다.
지난 7일 개막한 서울대미술관 기획전 '거짓말'은 허구-거짓말을 사용해 창작하는 최근 한국미술 동향을 살피는 전시다.
전시는 '미술가들이 실제를 가장한 허구를 작업 방법론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예술 활동이 일반적인 '사기'와는 어떻게 다른지, 거짓말을 내세워 진정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등을 살펴본다.
김범, 구민자, 신정균, 안규철, 오재우, 이병수, 이수영, 이준형, 장보윤 작가가 회화와 설치, 영상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선보인다.
구민자는 영상 '스퀘어 테이블'에서 공무원직에 예술가 직렬을 신설한다는 '가정' 아래 다방면 인사들이 모여 공청회를 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통해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등을 살핀다. 정부가 작성한 남파간첩 행동 양식을 일반인이 늦은 밤 공원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담은 신정균 작품은 우리 안에 도사린 불안을 포착한다.
뉴스를 비롯한 각종 정보의 진실성이 의심받고, 저마다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 시대상에 비춰서 곱씹으면 더 좋을 전시다.
전시는 5월 26일까지.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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