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도연 기자 =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난 첫사랑과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된 연인 관계 중 어느 것이 진짜 사랑일까.
오는 14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아사코'는 첫사랑과 같은 얼굴,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여자 앞에 짧았지만 강렬했던 첫사랑이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일본 오사카에 사는 아사코(가라타 에리카 분)는 바쿠(히가시데 마사히로)에게 처음부터 강하게 끌린다. 바쿠와 함께하는 모든 날이 특별했지만 언제든 자유로운 영혼인 그가 떠나버릴까 두렵다. 그 불안은 어느 날 현실이 된다. 바쿠가 신발을 사러 나간다고 한 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은 것.
1년 반 뒤 오사카를 떠나 도쿄에 정착한 아사코는 바쿠와 똑같이 생긴 료헤이(히가시데 마사히로)를 만난다. 겉모습만 같을 뿐 현실적인 료헤이는 바쿠와는 완전 반대다. 혼란스러운 아사코는 끊임없이 구애하는 료헤이를 밀어내지만 결국 자상한 그에게 마음을 연다. 안정적인 료헤이와의 관계가 이어지던 어느 날, 바쿠가 아사코 앞에 나타난다.
이 영화는 단순하게 보면 같은 얼굴의 첫사랑과 현재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한 여성 이야기다. 중반부까지도 아사코 마음이 과연 누구를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다. 아사코조차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사코를 연기한 가라타 에리카의 무표정한 얼굴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그리고 그의 선택을 비난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그러나 이 영화의 내용을 꿈과 현실로 나눠서 볼 수도 있다. 바쿠는 꿈의 영역, 료헤이는 현실의 영역에 있다. 영화 원제인 '자나 깨나' 역시 이와 일맥상통한다. 바쿠의 행동이나 그와 아사코의 상호작용에는 마치 꿈처럼 기승전결이 없다.
둘은 만나자마자 입을 맞추고 바쿠는 불쑥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고 또 갑자기 다시 나타난다. 평범한 회사원인 료헤이는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법한 인물이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속에 스며든 불안 또는 트라우마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료헤이를 줄곧 밀어내던 아사코가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되는 계기도 지진이라는 재앙을 겪으면서이고 연인이 된 둘은 자주 피해 지역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할 정도다. 바쿠와 함께 떠난 아사코가 센다이에서 멈추고, 쓰나미 위협 때문에 높이 쌓아둔 방파제 때문에 과거에는 보이던 바다가 이제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도 상징적이다.
연출 역시 인상적이다. 이 연출은 이 영화를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닌 심리 스릴러의 영역으로 데려다 놓는다. 아사코가 바쿠를 만나는 장면과 그와 닮은 료헤이를 만나는 장면 등에서는 스릴러에나 쓰일 법한 배경음악이 들리고 딱히 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긴장감이 조성된다.
바쿠와 료헤이의 서로 다른 두 명을 연기한 히가시데 마사히로의 연기가 눈에 띈다. 그는 사투리 등으로 전혀 다른 두 인물에 차이를 둬 연기했다. 가라타 에리카는 국내에서 뮤직비디오와 휴대전화 광고모델로 얼굴을 알린 배우다.
'해피아워'를 연출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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