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사우디서 재정후원 놓고 논란(종합)

입력 2019-03-12 01:50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 사우디서 재정후원 놓고 논란(종합)
"사우디, 5년간 191억원 지원하는 대신 이사회 참여 계획"
정치권 "인권탄압국 사우디 돈 받는 건 이탈리아에 대한 모욕"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극장인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재정적 후원을 받는 대신에, 사우디 정부 인사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임명하려는 계획을 공개하자 현지에서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이탈리아의 문화적 자존심을 대표하는 극장이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에서 드러난 것처럼 대표적인 인권 탄압국으로 꼽히는 사우디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그 대가로 극장의 감독 기관인 이사회에 사우디 인사를 앉히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라 스칼라는 오는 18일 이사회를 열고 사우디로부터 이 같은 재정 후원을 받고, 사우디측 인사를 이사회에 진입시키는 안건에 대해 논의해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라 스칼라 극장은 알렉산더 페레이라 예술감독이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로부터 5년에 걸쳐 1천500만 유로(약 191억원)를 후원받는 대신에 사우디 왕자인 바데르 빈압둘라 빈모하메드 빈파르한 알사우드 문화장관을 라 스칼라 이사회의 일원으로 임명하는 방안을 놓고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지난 주 밝혔다. 이후 좌파와 우파를 막론한 정치권에서 거센 질타를 받는 등 후폭풍에 시달려 왔다.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의 측근으로 알려진 바데르 문화장관은 2017년 11월 미국 뉴욕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세계 예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4억5천30만달러(약 5천억원)에 낙찰됐을 때 작품의 대리 구매자로 유명하다.
이탈리아 정치권은 사우디가 라 스칼라에 후원하고, 극장의 제반 사항을 결정하는 이사회 진출을 희망하는 것에는 카슈끄지 살해 사건으로 악화한 국가적 이미지를 세탁하려는 노림수가 숨어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 왕실에 비판적인 칼럼을 미국 언론에 기고했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는 작년 10월, 결혼 관련 서류를 받으러 터키 이스탄불 주재 사우디 총영사관에 들어갔다가 살해당한 바 있다.



야당인 중도좌파 민주당의 유럽의회 의원인 안토니오 판체리는 "사우디의 라 스칼라 진입은 밀라노와 이탈리아를 모욕하는 것"이라며 "예술기관이 자금을 조성할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밀라노의 가장 명망 있는 상징이 자국에서 자유와 인권을 상시적으로 짓밟는 사람들과 협력하도록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 소속의 마우리치오 가스파리 의원 역시 "정부는 라 스칼라의 역사와 정체성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며 포퓰리즘 정부에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페레이라 예술감독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카슈끄지 사건을 면밀히 지켜봐 왔으며, 사우디 정권의 '전제적' 특성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음악의 긍정적인 힘을 믿는다. 40년 동안 문화에 빗장을 걸었던 국가가 문호를 여는 것은 바람직한 신호"라고 주장했다.
사우디가 라 스칼라에 연간 300만 유로씩 5년 동안 후원을 하는 조건에는 라 스칼라가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어린이를 위한 음악원을 설립하고, 리야드에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페레이라 예술감독은 라 스칼라가 사우디로부터 후원금을 받지 않으면, 이 돈은 프랑스 등 다른 나라로 가게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라 스칼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주세페 살라 밀라노 시장은 사우디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대신 바데르 문화장관을 이사회의 일원으로 임명하는 것에 대해 "이사회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길 원하지 않는다"며 이번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히길 거부했다.
그는 다만, 사우디로부터 후원을 받는 문제와 이사회의 구성원을 임명하는 문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취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1778년 개장한 유서 깊은 라 스칼라 극장에는 작년의 경우 1억2천500만 유로(약 1천6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됐다고 코리에레델라세라는 전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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