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대북제재위…"北해상환적, 쌍둥이 선박에 소셜미디어 활용"
유엔, 27개국 제재위반 여부 조사…"北 '고수익' 이란 등과 군사무기 협력"
사이버 해킹·어업권 판매 '외화벌이'…'2억원 현금다발' 소지 北국적자 체포
(뉴욕=연합뉴스) 이귀원 이준서 특파원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제재를 회피하려는 북한의 수법이 한층 정교해진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2017년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망이 '정권의 생명줄'인 유류 부문으로 확대되자, 제재회피의 수싸움이 치열해졌다는 뜻이다.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공개한 전문가패널 연례보고서에서 북한의 다양한 제재회피 수법을 지적했다.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조사받고 있는 국가도 전 세계 30개국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전문가패널이 매년 두 차례 안보리에 제출하는 것으로 대북제재의 이행과 효과에 관한 종합적인 평가결과다.
◇"北 불법 환적 정교해지고 범위·규모 확대"
대북제재위는 보고서에서 "북한의 불법적인 '선박 대 선박'(ship-to-ship) 환적이 정교해지고 그 범위와 규모도 확대됐다"면서 "석유제품의 불법 환적이 지난해 크게 늘었다"고 평가했다.
공해상에서 거래된 석유제품이 북한에 유입되는 창구로는 남포항이 꼽혔다.
제재위는 "북한의 항구, 특히 남포항은 의심스러운 불법 활동의 허브"라며 "남포항에서는 금수품묵인 북한산 석탄이 수출되고, 불법 환적된 유류의 수입이 폭넓게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상의 선박으로부터 남포항의 수입터미널로 연료를 옮기는 과정에서 수중송유관(underwater pipeline)이 사용되고 있다고 제재위는 설명했다.
북한은 국제적인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더욱 복잡한 해상 환적 수법을 동원했다.
제재위는 육퉁(Yuk Tung)호를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지난해 5월 22일 육퉁호는 동중국해 해상에서 일명 '선박 스푸핑'(위장) 수법을 사용했다.
육퉁호는 파나마 국적의 마이카(Maika)호인 것처럼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보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도양 코모로제도 국적의 하이카(Hika)호로 등록했다. 정작 하이카호는 동중국해에서 7천 마일 이상 떨어진 아프리카 대서양의 기니만에 정박 중이었다.
제재위는 "선박 위장은 사전에 주의 깊게 기획된 것"이라며 "육퉁호와 하이카호는 같은 제조업체에 의해 같은 연도에 쌍둥이 선박으로 건조됐다"고 전했다.
이러한 선박 국적 세탁을 위해 편의치적(Flag of Convenience) 제도를 악용했다고 제재위는 지적했다. 편의치적이란 선박을 자국에 등록하지 않고 규제가 느슨한 제3국에 등록하는 것을 말한다.
해상 환적의 통신수단으로는 '중국판 카카오톡'으로 불리는 중국 텐센트의 위챗(Wechat)이 사용됐다.
제재위는 "동중국해·서해상 해상환적의 통신수단으로는 주로 위챗이 활용됐다"면서 "중국 위안화 지폐의 마지막 네 자리 숫자를 사진으로 찍어 위챗으로 전송하는 방식으로 서로 신원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가상화폐의 기반인 블록체인 기술이 선박거래에 활용됐을 가능성도 거론됐다.
홍콩에 등록된 블록체인 스타트업인 '마린 체인'의 자문역에 북한 국적 인사가 참여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설립된 업체이지만, 같은 해 9월에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제재위는 "대략 23척의 유조선이 석유제품의 해상 환적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됐고, 그 가운데 6척이 절반가량의 물량을 담당했다"면서 안산1·천마산·삼정2·유손·금은산·새별(청림2) 등 6척을 지목했다.
인도네시아 동칼리만탄 해역에서 거래된 북한산 석탄의 최종 목적지가 한국 업체 E사라는 인도네시아 당국의 보고도 있었다고 제재위는 덧붙였다. E사는 제재위에 "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았고, 석탄 수입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구지검이 지난해 12월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불법적으로 들여온 혐의로 석탄수입업자 A씨를 비롯한 9명(5개 법인 포함)을 기소한 내용도 보고서에 반영됐다.
◇"北무기거래, 가장 수익성 좋은 곳은 이란"
제재위는 불법무기 거래, 군사협력 등으로 대북 제재위반 여부를 조사받는 국가로 모두 27개국을 꼽았다. 북한의 불법적인 무기거래는 매년 패널보고서에 단골로 등장하는 내용이다.
알제리, 앙골라, 보츠와나, 민주콩고, 이집트, 에리트레아, 리비아, 마다가스카르, 모잠비크, 나미비아, 시에라리온, 남아프리카, 수단, 우간다, 탄자니아,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 국가가 16개국으로 절반을 웃돌았다.
북한 측이 민주콩고의 금광 사업에 개입하고 대통령 경호부대에 9mm 화기를 제공하고 군사훈련을 진행한 의혹도 조사 중이라고 제재위는 밝혔다.
제재위는 앙골라, 리비아, 수단, 우간다, 남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등에 대해서도 북한과의 군사협력 프로젝트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동권에서는 시리아, 이란, 예멘, 아랍에미리트(UAE) 등이 대북제재위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특히 북한의 군사협력 부분에서 가장 수익성이 좋은 시장 2곳 가운데 하나가 이란이라는 점과 북한 무기수출업체인 청송연합 및 조선광업개발무역회사(KOMID) 등의 이란 현지 사무소가 여전히 운영 중이라는 사실도 공개했다.
이란에 체류하는 북한 인사들이 현금 운반책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한 회원국의 보고도 보고서에 담겼다.
북한과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군사적 협력관계도 조사 대상이다. 또 북한이 예멘의 친이란 후티반군에도 재래식 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공급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고 제재위는 설명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 활동에 필요한 핵심품목으로 꼽히는 압력변환기 거래에 관련된 의혹으로 제재위의 조사 대상에 올랐다.
유엔 제재 블랙리스트에 오른 천강무역회사와 남흥무역회사 등 2곳의 중국계 업체를 비롯해 관계자들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고 제재위는 밝혔다.
◇"가상화폐거래 해킹 수천억원 절취…北어업권 면허 소지 中어선들 조사중"
대북제재위는 북한이 사이버 해킹을 통해 달러는 물론 가상화폐까지 탈취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이버 해킹은 북한 정찰총국이 주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의 해커들이 2018년 5월 칠레 은행을 해킹해 1천만 달러(약 113억원)를 빼돌리고, 같은 해 8월에는 인도의 코스모스 은행에서 1천350만 달러를 빼내 홍콩의 북한 관련 회사 계좌로 이체한 사실이 밝혀졌다.
대북제재위는 "한 평가에 따르면 북한은 2017년 1월부터 2018년 9월까지 아시아에서 최소 5차례에 걸쳐 가상화폐거래소를 해킹, 5억7천100만 달러(약 6천458억원)를 절취했다"고 설명했다.
대북제재위는 북한 국적의 '김광일'이라는 인물이 지난해 10월 17만9천900달러(약 2억원)에 달하는 현금 뭉치를 소지하고 있다가 세관에서 러시아 당국에 체포됐다고 밝혔다.
북한은 외화벌이를 위해 중국 어선 등에 대한 어업면허권도 판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어업면허권 판매도 안보리 제재위반이다.
대북제재위는 2개 유엔 회원국이 북한이 발급한 어업면허권을 소지하고 있던 15척 이상의 중국 어선을 조사했다고 밝혔다. 한 회원국의 조사에서는 북한 인근 해역에서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이 200척에 이르며, 어업면허료는 한 달에 5만 위안(약 841만원)에 이른다는 증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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