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그리스가 정교회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장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 한걸음 더 다가섰다.
지오르고스 스타타키스 환경장관은 13일 수도 아테네에 첫 화장장을 건립하는 계획을 승인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화장을 합법화한 지 13년만에 이뤄진 성과다.
그리스 의회는 지난 2006년 화장을 합법화했지만 정교회측에서 화장이 복음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으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탓에 공공 화장장은 여전히 전무한 상태다.
지난 1950년대부터 도시화가 가속화되면서 이 나라의 묘지들은 과밀화에 시달리고 있다. 급기야 매장한 지 3년이 지난 시신은 유골을 수습한 뒤 납골당으로 옮기는 편법이 동원됐지만 시신이 완전히 부패되지 않은 상태에서 처리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그동안 화장을 원하는 그리스인들은 인접국인 불가리아로 시신을 옮겨야 했다. 이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3천 유로에서 최고 6천 유로에 이른다.
국내에서 매장할 경우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1천500유로고, 화장에 소요되는 600∼700 유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따라서 화장은 묘지의 과밀화를 해소할 뿐만 아니라 유족들의 금전적 부담도 크게 줄이는 셈이다.
기오르고스 카미니스 아테네 시장은 화장장 건립이 중앙 정부의 승인을 받은 데 대해 "획기적 진전"이라고 반기면서 이는 지난 2014년부터 그가 공약한 사업이었다고 강조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도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개혁 조치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수도에 화장장을 건립할 필요성은 "자명한 것"이었다고 논평했다.
카미니스 시장이 추진하는 화장장은 엘로이나스 지구에 있는 시유지에 건립될 예정이다. 화장장 주변에는 공원과 스포츠 시설을 세우고 대기오염과 악취를 막기 위해 유럽연합(EU)의 기준도 철저히 준수하겠다는 것이 아테네시의 방침이다.
정교회측은 매장의 전통을 외면하고 화장을 택하는 유족들에게는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해왔다. 정교회 최고회의는 아테네의 첫 화장장 건립에 강경한 자세로 나올 것이 거의 확실하다.
정교회가 화장을 반대하는 데는 현실적인 고려 요인도 없지 않은 듯하다. 매장은 장의업계 뿐만 아니라 정교회에도 상당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스타타키스 환경장관이나 카미니스 시장은 공사를 언제 시작하고 마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일단 정교회의 눈치를 살피겠다는 모양새다.
아테네에 앞서 지방 대도시 테살로니키, 항구도시 파트라의 지자체도 화장장 건립을 추진했지만 정교회가 반대하는 바람에 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와 달리 유럽 국가들에서는 화장이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스위스의 화장 비율이 87.5%로 가장 높고 덴마크(81%), 스웨덴(80%)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75%, 55%이며 포르투갈도 50%선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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