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별 인권보고서 발표…북미협상 고려 '北정권 차원 침해' 강조 피한듯
언론보도 등 인용해 인권침해 사례 나열…웜비어 사건 언급은 없어
美인권대사 사례 나열 들어 "함축적으로 지독" 해명…北반박도 곳곳 포함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미국 정부가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에서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수위와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을 삭제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상황에서 자극적인 표현을 배제해 북한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빅딜 대화' 테이블에 나서도록 유화적 제스처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미 국무부가 13일(현지시간) 내놓은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에는 2017 보고서에 포함됐던 "북한 주민들이 정부의 지독한 인권침해에 직면했다"는 표현이 빠졌다.
대신 2018 보고서에는 "(북한의) 인권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는 식으로만 기술됐다.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가 '지독한' 수준이고 북한 정권이 이에 책임이 있다는 미국 정부의 평가가 삭제된 것이다.
북한이 당국에 의한 광범위한 인권침해를 부인하는 가운데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을 피함으로써 외교적 해결을 도모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의지를 재차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2018 보고서에는 "(북한) 정부는 인권 침해를 저지른 관리들을 처벌하기 위한 어떠한 믿을만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포함됐다. 이 역시 "어떠한 알려진 시도도 한 바 없다"는 2017 보고서 표현보다는 다소 수위가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2018 보고서는 북한 내 인권침해의 항목을 세부적으로 나열하면서 '정부에 의한 불법적 살해', '정부에 의한 강제실종', '당국에 의한 고문', '공권력에 의한 임의 구금' 같은 표현을 사용, 북한 정권에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비쳤다.
2018 보고서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현재 조선노동당 위원장"이라는 직함 설명이 추가됐다. 김 위원장이 북한의 최고권력기구인 조선노동당을 이끌고 있다는 서술로 김 위원장의 북한 내 위상을 추가로 명시한 것이다.
2018 보고서는 항목별 인권침해 실태를 나열하면서 자체적으로 수집한 정보를 거론하기보다 언론 보도나 인권단체의 보고서, 탈북민들의 주장 등을 인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언론보도나 연구보고서 등을 토대로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340건의 공개처형이 이뤄졌고 전기충격이나 물고문, 극심한 폭행 같은 고문이 자행되고 있다는 등의 인권침해 실태가 상세히 들어갔다.
엄마에게 영아살해를 강요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와 정치범 수용소 내에서 이뤄지는 잔혹한 인권침해 실태도 언론보도 등을 인용하는 방식으로 거론됐다.
그러나 '실종' 항목에서 "NGO와 싱크탱크 보고서, 언론 보도를 보면 (북한) 정부가 (강제) 실종에 책임이 있음을 시사한다"는 식으로 표현, 북한 정권의 책임에 대한 미 정부의 직접적인 평가를 피했다.
마이클 코작 국무부 인권담당 대사는 2018 보고서에 '지독한'이라는 표현이 빠진 이유와 관련해 보고서에 각종 인권침해 사례가 나열돼 있음을 거론하며 "함축적으로 북한은 지독하다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2018 보고서에는 전년도 보고서와 같이 김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암살 사건도 명시됐으나 2명의 여성이 기소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정도의 설명에 그쳤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식물인간 상태로 귀환해 결국 숨진 미국인 오토 웜비어의 이름은 보고서에 등장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북미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웜비어 사건을 뒤늦게 알게 됐다는 김 위원장 말을 믿는다'고 했다가 비판 여론에 직면한 바 있다.
보고서에는 북한이 납치한 것으로 보이는 일본인 12명의 행방 파악에 진척이 없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의 관심이 반영된 결과로 분석된다.
납치 연루는 물론 정치범 수용소 등의 존재도 부인하는 북한의 반박 입장도 곳곳에 들어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보고서 서문에 "미국의 국익을 발전시킨다면 그들의 전력(record)과 상관없이 다른 정부들과 관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가깝게 지내고 상습적 인권침해국인 북한에 손을 뻗고 중국 및 러시아와 논의를 이어가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제한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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