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In] 담쟁이덩굴에 가려진 6월 항쟁도 두고 복원 갈등

입력 2019-03-14 09:08  

[현장 In] 담쟁이덩굴에 가려진 6월 항쟁도 두고 복원 갈등
동아대 "디지털 복원해 박물관에" vs 추진위 "현장 복원해야"
추진위 "4∼6월에 담쟁이덩굴 걷어 낼 것"…실력행사 예고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부산 동아대 승학캠퍼스 한 벽면에 무성한 담쟁이덩굴을 걷으면 부산·경남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6월 항쟁 관련 벽화가 나온다.
벽화 복원을 두고 학교 측과 동아대 민주동문회 등으로 구성된 벽화복원사업추진위원회(추진위)는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추진위는 "담쟁이를 걷어낸 뒤 벽화를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학교 측은 "디지털복원 방식으로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회 측이 4·19혁명 기념일이나 6월 담쟁이덩굴을 걷어내 희미해진 벽화라도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예고했다.

◇ 6월 항쟁도는 왜 담쟁이덩굴에 가려졌을까?
동아대 승학캠퍼스 교수회관 앞 벽에 길이 30m, 높이 3m로 그려진 6월 항쟁도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1년 뒤인 1988년 6월 15일부터 두 달간 제작됐다.
학내 그림 동아리인 '열린 그림 마당'이 6월 항쟁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태춘 열사가 성조기를 찢는 모습 등을 그려 넣었다.
2007년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항쟁도를 지우려고 하자 부산 민주항쟁기념사업회·부산 민족미술인협회, 대학생 등이 반발해 논란이 일었다.
현재는 6월 항쟁도 대부분이 담쟁이덩굴에 가려진 채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수년 전부터 동아대 민주동문회를 중심으로 복원 요구가 있었다.
복원 계획이 공론화되지 못하자 동아대 민주동문회를 비롯한 전국 68개 대학의 민주동문회와 부산 22개 시민사회단체가 벽화복원사업 추진위원회를 꾸려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지난해 3월에는 박경호 작가가 제작한 벽화 복원 시안도가 공개되기도 했다.
동아대도 지난해 벽화를 재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순조롭게 복원되는 듯했지만, 학교 측이 디지털복원을 택하자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 복원 방식·시점 두고 동아대·추진위 갈등
동아대 석당 학술원은 지난해 12월 26일 학술대회를 열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6월 항쟁도를 복원하는 방안을 소개했다.
동아대는 당시 6월 항쟁도를 3D 스캐닝 기법으로 복원하겠다고 했다.
3D 스캐닝은 문화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스캔해 형태를 복제하는 기술이다.
학교 측은 옹벽에 배수로가 있어 현 위치에 복원해도 영구적으로 보존되지 못하기 때문에 디지털복원을 통해 박물관에서 영원히 보존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동아대 관계자는 "6월 항쟁도가 역사적 가치는 있는 것은 분명한데 현 장소에 복원하기에는 물리적으로 한계도 있고 벽화가 현재 시대상과는 안 맞는다는 의견이 있어 디지털복원 방식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추진위 측은 동아대가 택한 디지털복원은 6월 항쟁도를 복원하려는 목적과 맞지 않는다고 맞선다.
추진위 관계자는 "디지털복원을 택한 것은 복원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벽화 실물이 존재하는데 박물관에 6월 정신을 가두려 하는 것은 진정한 벽화 복원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6월 항쟁도가 학내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부산지역에 6월 민주항쟁을 대표하는 벽화로서 많은 사람에게 공개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되어서 담쟁이를 걷고 6월 항쟁도 벽화를 보여주는 행동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대는 담쟁이덩굴도 학교 사유 재산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추진위가 담쟁이덩굴을 걷었을 때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handbrother@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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