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국 재벌에 대한 인식은 이중적이다. 불굴의 기업가 정신으로 압축 성장기에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주역이기도 하고, 각종 특혜를 받으며 한국경제의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을 야기한 '정경유착'의 주범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하지만 수출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이 한계를 드러낸 데다 성장의 열매를 함께 누려야 하는 '포용성장'이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으면서 재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커지고 있다. 총수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 전횡을 일삼는 독단경영과 편법 경영 승계,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일감 몰아주기와 사익편취, 협력업체 단가 후려치기, 기술탈취 등 재벌의 폐해는 아직도 여전해 낱낱이 열거하고 싶지도 않다.
국민들의 재벌에 대한 의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는 여론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연합뉴스의 의뢰를 받아 전국 19세 이상 남녀 1천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재벌 및 재벌개혁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 3명 가운데 2명은 재벌에 부정적이라고 답했다. '예전에 부정적이었다(63.4%)는 응답보다 '현재 부정적이다'(66.9%)는 응답 비율이 높았다. 재벌이 한국경제를 불균형·불평등하게 만들었다는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도 '현재 공감한다'(64.4%)는 응답이 '예전에 공감했다'(61.0%)는 응답보다 조금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은 부정적 시각이 강한 편이지만 최근 들어 그 강도가 세졌다는 의미로 읽힌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재벌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지만,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볼 때 개혁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글로벌 경기 둔화로 경제가 하락국면에 접어들면서 일각에서는 재벌개혁이 주춤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 강도에 대해 과반인 56.0%는 '지금보다 강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약하게 추진해야 한다'(20.4%)라거나 '현재처럼 하면 된다'(18.8%)는 응답보다 크게 높았다.
이처럼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은 높고 재벌개혁 요구도 여전히 강하다. 우리는 촛불혁명 과정에서 '정경유착'의 폐해를 똑똑히 봤다. 재벌개혁은 우리의 경제체질을 보다 생산적인 구조로 바꾸고, 저성장 양극화를 개선하는 데 꼭 필요하다. 그 과정이 어렵고 힘들더라도 후퇴해서는 안 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현재 국회에 넘겨진 상법,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처리해야 한다. 당·정·청은 일부 야당이 반대한다고 머뭇거리거나 후퇴할 일이 아니라 강한 의지로 개정법안 처리에 나서야 한다. 나빠진 경제 상황이나 고용 부진이 재벌개혁을 늦출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고용은 기업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고, 재벌개혁을 늦춘다고 해서 기업이 계획에 없는 고용을 늘리지 않는다. 재벌개혁이 장기적으로는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여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