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러시아 체첸 자치공화국 법원이 반체제 인사와 동성애자 탄압을 비판해온 인권운동가에게 징역형을 선고하자 인권탄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8일(현지시간) 러시아의 대표적 인권단체 '메모리얼'의 체첸 지부 대표 오유브 티티예프에게 징역 4년형이 선고됐다고 보도했다.
담당 판사는 이날 9시간에 걸쳐 판결문을 낭독한 끝에 형량을 선고했다.
티티예프는 하얀 철창에 기댄 채 판사의 판결문 낭독을 들었으며, 몇몇 친척들은 졸음을 참지 못했다.
취재 기자들은 무릎을 굽혔다 펴며 스트레칭을 했으며, 재판을 참관하러 온 유럽의 외교관들은 판결문 낭독이 6시간 이상 이어지자 자리를 떴다.
티티예프는 지난해 마리화나 200g 이상을 소지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경찰은 불심검문 도중 차에서 마리화나가 발견됐다며 그를 체포했다.
그는 마약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고, 그의 동료들은 티티예프가 체첸 당국의 납치·고문 실상을 폭로해 체포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티티예프 사건은 이미 러시아 내 반체제 인사에 대한 터무니 없는 탄압 사례로 여겨져 왔다.
친(親) 러시아 인사로 2007년부터 철권통치를 이어온 체첸공화국 수장 람잔 카디로프는 티티예프가 체포된 이후 체첸은 인권 운동가에게 "금지된 땅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로이터 제공]
각종 인권 침해로 미국의 제재 대상자 명단에 오른 카디로프는 지난해 8월 "인권운동가에게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티티예프 재판이 끝나면 체첸은 테러리스트나 극단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인권운동가에게도 금지된 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가디언은 카디로프가 이를 실행에 옮길지는 불확실하다고 전했다.
티티예프에게 실형이 선고되자 인권단체와 국제기구는 일제히 체첸 법원을 비판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성명을 내고 "징역 4년형은 인권과 이성, 정의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유럽평의회 인권담당관도 "이번 선고는 체첸 자치공화국의 인권 운동가들이 처한 적대적이고 위험한 환경의 최신 사례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티티예프는 이날 재판 후 "9개월 동안 그들은 혐의를 조작했고, 8개월 동안 판결을 조작했다"고 말했다.
법원이 다소 관용을 베풀었다는 시각도 있다. 법원은 티티예프에게 감옥이 아닌 유배지에서 4년을 지내도록 했다.
티티예프는 특정 시간에는 유배지 주변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사복도 입을 수 있다. 또 법원은 매월 이틀간 집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기디언은 "판결문에서 보여준 관용은 놀라운 것"이라고 평가했다.
티티예프의 가족은 형량이 우려한 것보다 무겁지 않아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보였다. 티티예프는 판결이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을 떠나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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