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부 "보는 것이 믿는 것"…외교 소식통 "비공식으로 의사 타진"
인권단체·전문가 "재교육 수용소 자유로운 접근 가능할 때만 의미"
(서울=연합뉴스) 정재용 기자 = 중국 당국이 신장(新疆)위구르(웨이우얼) 자치구의 이슬람교 소수 민족 '탄압'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베이징(北京) 주재 유럽국가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신장위구르 자치구 방문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했다.
중국 외교부는 20일 발표문을 통해 이런 계획을 공식 확인했다고 영국의 로이터통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대만의 타이베이 타임스(Taipei Times) 등이 보도했다.
중국 외교부는 발표문에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면서 "우리는 유럽의 외교관들이 신장의 모든 소수 민족이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고 일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유럽 외교관들의 구체적인 방문 일자와 계획을 조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중국 당국이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위구르족을 비롯한 소수 민족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재교육 수용소' 운영에 대한 국제사회의 거센 압박에 대해 보다 적극적, 공세적 대응으로 선회했음을 시사하는 행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앞서 중국 국무원 신문판공실은 지난 18일 '신장 반테러·극단주의 척결 투쟁 및 인권보장' 백서를 발표하고, 지난 5년간 이 지역에서 약 1만3천명의 테러리스트를 검거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중국 신문판공실은 백서를 통해 "2014년 이후 신장 당국은 1천588 개의 폭력 및 테러리스트 조직을 분쇄하고, 1만2천995명의 테러리스트를 검거했다"면서 "현실적인 위협에 맞서 신장은 단호한 조처를 했고 법에 따라 반테러리즘과 극단주의 척결 투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중국 당국이 유럽국가 외교관들을 단체로 신장 위구르 자치구를 방문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중국 당국은 이달 말까지 베이징에 상주하는 유럽국가 대사관에 '비공식적으로' 신장위구르 자치구 방문을 초청할 것이라고 로이터통신이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외교 소식통은 중국 당국은 현재 베이징에 상주하는 유럽국가 대사관을 상대로 초청 수락 여부를 '타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에 주재하는 한 외교관은 "유럽국가 외교관들은 만일 방문 기간 제한 없는 접근이 허용된다면 중국 정부의 초청을 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SCMP는 전했다.
하지만 신장위구르 자치구 문제 권위자인 독일 문화신학대학원의 아드리안 젠즈 교수는 유럽국가 외교관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신장위구르 방문 프로그램이 작년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국가 외교관들을 상대로 이뤄졌던 프로그램과 비슷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당시 중국 당국은 이들 국가 외교관에게 이슬람교를 믿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교들이 '즐겁게' 춤을 추는 장면을 보여주는 등 극히 제한된 범위에서 방문 활동을 허용했다.
젠즈 교수는 "이런 것은 중국 당국의 국가 선전·선동에 이용만 당하는 것"이라면서 "필요한 것은 경험 많은 전문가들이 재교육 수용소를 무작위로 선택해 자유롭게 접근해서 독립적으로 사실 확인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유럽국가 외교관들의 신장 방문 프로그램도 이들 외교관이 자유롭게 신장위구르 지역을 여행하고 제약 없이 주민들을 인터뷰할 수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젠즈 교수는 신장위구르 자치구의 상황을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선 방문 기간이 최소 2주는 되어야 하며, 이들 외교관과 이들을 돕는 팀이 재교육 수용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도록 위성사진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과 같은 기술적인 조력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위구르회의(World Uyghur Congress)의 피터 어윈 프로그램 매니저는 과거 신장위구르 방문 프로그램이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하게 중국 당국에 의해 통제됐다는 점을 상기한 뒤 "미리 준비된 시설에 외교관들을 단순하게 들르게 하는 어떤 방문 프로그램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과 터키는 신장위구르 자치구 당국이 위구르족을 비롯한 소수 민족 이슬람교도들을 대상으로 재교육 수용소를 운영하는 데 대해 "인권탄압"이라면서 즉각적인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13일 '2018 국가별 인권보고서'를 발표해 중국의 소수 민족 박해와 시민 탄압 등 인권문제를 비판하면서 신장위그루 자치구의 재교육 수용소를 "인권 침해의 온상"이라고 적시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특히 중국이 "인권 침해에서 독보적인 수준에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위구르족과 인종적, 문화적 연계가 있는 터키는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 탄압 문제에 깊은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들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 측은 신장위구르 자치구 내 약 100만 명에 달하는 위구르족과 다른 소수 민족 이슬람교도들이 재교육 수용소에서 재교육을 받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재교육 수용소에 수용된 이슬람교도를 대상으로 이슬람교를 부정하고 공산당에 대해 충성하도록 세뇌 교육을 하고 있다고 국제 인권단체들은 비판하고 있다.
신장위구르 자치구 이외에도 닝샤(寧夏) 후이족(回族) 자치구, 간쑤(甘肅)성 등 후이족 이슬람교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지역에서도 이슬람 사원이나 거리의 이슬람교 장식물이나 표지판 등이 강제로 철거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중국 당국은 재교육 수용소가 테러리즘과 극단주의에 대응하는 데 필요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인도적 직업교육센터"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jj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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