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 '어진, 왕의 초상화'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은 임금 초상화인 어진(御眞)을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왕으로 여겼다.
어진을 제작할 때면 좋은 날짜와 시간을 택해 작업했고, 진전(眞殿·어진을 모신 전각)에 어진을 봉안하는 행차는 임금을 모시는 수준으로 진행했다.
어진을 그리는 화사(畵師)는 그림 실력이 뛰어난 사람 중에 선발했다. 그는 '터럭 한 올이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는 명제에 따라 최대한 사실적으로 용안을 묘사했다.
그렇다면 어진은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야 합격점을 받았을까.
미술사학자이자 초상화 연구자인 조선미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신간 '어진, 왕의 초상화'에서 "'칠분모'(七分貌) 즉 7할의 완성도면 극진한 것으로 평가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대 최고의 화가, 거국적 배려, 세심한 봉심(奉審)을 거친 어진도 최고로 잘 그려야 70%의 완성도밖에 도달할 수 없었다"며 "초상화에서 '전신사조'(傳神寫照·인물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그리는 것)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엄격한 잣대로 인해 초상화의 예술적 성취도는 더 고양됐다"며 "어진 속 수염을 보면 올올 마디의 형용은 너무나 정세하면서도 자연스럽다"고 평가했다.
조 교수는 책에 조선시대 어진 제작과 봉안, 현존하는 조선시대 어진에 대해 상세히 정리했다.
조선 어진 대부분은 한국전쟁 때 부산으로 옮겼으나, 창고에서 화재가 일어나 거의 다 타버렸다. 지금 남은 어진들도 반 이상 훼손돼 얼굴을 알 수 없는 작품이 많다.
저자는 조선 어진 특징에 대해 "대부분 왕이 재위했을 때 제작했고, 진전에 모시는 제의용이 많아 근엄한 군주의 모습을 형상화하는 데 주력했다"고 설명한 뒤 "현존하는 작품을 잘 보존하면서 어진이 차지한 사회적 기능과 의미를 되새겨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356쪽. 2만4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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