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한 점 1천억원…서울시립미술관, 英테이트미술관 손잡고 개인전
'더 큰 첨벙'·'클라크 부부와 퍼시' 등 시대순 소개…포토콜라주는 빠져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첨벙! 그림 정중앙에 하얀 포말이 인다. 저택에 딸린 수영장에 누구 하나 보이지 않지만, 물보라는 누군가 다이빙대에서 막 낙하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다이빙을 시도한 이는 누구일까. 이 고요한 그림은 수면 아래 나아가 그림 너머 이야기를 마구 상상해보도록 우리를 이끈다.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82)가 1967년 그린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이다. 호크니는 스스로 '영국 LA 사람'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1964년 초반 처음 방문한 로스앤젤레스 풍경에 매료됐다. 수주에 걸쳐 세필로 작업한 '더 큰 첨벙'은 이른바 '수영장' 작업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더 큰 첨벙'을 비롯해 호크니 주요 작품이 21일 서울시립미술관(SeMA) 서소문 본관에 걸렸다.
서울시립미술관과 영국 테이트미술관이 기획한 '데이비드 호크니'는 회화와 드로잉, 판화 133점으로 구성된 아시아 첫 대규모 개인전이다. 1954년 초기작부터 현재까지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테이트 컬렉션 중 1점을 제외한 나머지가 서울에 왔다. 영국문화원, 호주빅토리아국립미술관 등 다른 기관 소장품도 전시에 포함됐다.
호크니는 1972년에 그린 '예술가의 초상'이 지난해 11월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9천30만 달러(약 1천19억원)에 팔리면서 '세계에서 가장 비싼 생존 미술가'가 된 터라, 이번 전시를 향한 관심이 더 뜨겁다.
호크니는 30대 중반에 이미 미술계를 넘어서는 스타가 됐지만, 한 스타일을 고수하지 않고 끊임없이 혁신해 왔다. 그는 이러한 다채로운 예술 여정으로 '존재 자체가 하나의 장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전시는 영국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영국 미술계에 데뷔한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정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데 주력한다.
초상과 정물, 풍경을 넘나들고, 관습적인 일점소실 원근법을 거부했으며, 회화부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를 섭렵한 작업은 호크니를 '팝아트 거장'이란 수식어에 가둘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주디스 네스빗 테이트미술관 디렉터는 "호크니가 호가스(18세기 영국 화가)를 두고 '자신이 목도한 것들을 거리낌 없이 작품에 표현해온 작가'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호크니의 예술 신념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첫머리에서 '환영적 양식으로 그린 차 그림'(1961)을 통해 1960년대 미국을 휩쓴 추상표현주의를 향해 반기를 든 젊은 호크니의 패기를 보여준다.
'더 큰 첨벙'을 비롯해 일련의 '수영장' 연작은 답답한 전시장에 청량감을 안겨준다. '녹색 없이 두 가지 파란 안료와 선, 크레용으로 그린 수영장 석판화' 등은 물을 탁월하게 다룬 호크니 작업이 수많은 노력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일러준다.
평소 가까웠던 유명 패션디자이너 부부를 그린 '클라크 부부와 퍼시'(1970~1971)도 호크니의 2인 초상화를 대표하는 작업이다. 인물 캐릭터까지 생생하게 드러낸 그림은, 화면 밖 관람객을 대담하게 응시하는 인물 묘사가 인상적이다.
'더 큰 그랜드 캐니언'(1998),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 또는 새로운 포스트-사진 시대를 위한 야외에서 그린 회화'(2007) 등 거대한 캔버스 회화는 관람객을 압도한다. 색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낸 솜씨가 인상적이다.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인 스튜디오 풍경을 담은 대형 회화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는 이번 한국 전시를 통해 공개된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젊은 시절 회화를 중단하고 매진한 포토콜라주 작업은 한 점도 포함되지 않았다. 헬렌 리틀 큐레이터는 "사진 작품 중에서 대여가 어려운 개인 소장품이 많았던 탓이다. 대신 최대한 광범위하게 작업을 다루려 노력했다"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8월 4일까지. 전시는 베이징과 함부르크에서 이어진다. 관람료는 성인 기준 1만5천 원이다.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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