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이미지 소모에 너덜너덜했던 날도 포기하지 않아 다행"
(서울=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 "풍상(유준상 분) 오빠가 저 시집 보낼 때, 서로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대사는 없었지만 눈빛만으로도 서로 하고 싶은 말을 다 했거든요. 그 장면들은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을 거예요."
시청률 20%를 넘기며 종영한 KBS 2TV 수목극 '왜그래 풍상씨'에서 똑똑하고 냉정하지만, 누구보다 속 깊은 셋째 정상을 연기한 배우 전혜빈은 이번 작품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최근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드라마 자체는 늘 우느라 힘들었지만 하루하루가 즐거웠다"라며 "특히 준상 오빠부터 (오)지호 오빠, (이)시영 언니, 그리고 (이)창엽이까지 우리 5남매는 정말 가족이 됐다"라고 강조했다.
"우리 작품에서 누구 하나 안 아픈 손가락은 없었어요. 진상(오지호)과 화상(이시영)이 그렇게 욕을 먹었지만 알고 보니 그들만의 아픈 기억이 있었잖아요. 작품 끝날 때까지 그 부분이 설명이 안 됐으면 악역으로 남겨졌겠죠. 그런데 결국 나쁜 것은 모두 엄마(이보희, 노양심 역)가 거둬가셨어요. 이보희 선생님도 '엄마가 용서받으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그는 이어 "문영남 작가님께서 미니시리즈에서는 하기 어려운 대본리딩, 그리고 '나머지 공부'까지 시켜주셔서 NG가 거의 안 났을 정도로 각자 캐릭터와 대본을 정확히 숙지했다"라고 팀워크를 자랑했다.
문 작가는 전혜빈에게 "다른 애들은 불같이 여기 뛰고 저기 뛰어도 정상이는 늘 이성적이고 냉정해야 한다. 그러다 풍상과 만나는 장면에서는 무너져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전혜빈은 "작가님의 글에는 모든 장치에 하나하나 다 이유가 있었다. 정상이를 많이 사랑해주시고 저도 예뻐해 주셔서 감사드린다"라고 인사했다.
그는 실제로는 정상과 닮은 점이 많지는 않다고 했다.
"저도 가족들에 대한 책임감은 강하지만 성격은 정도 많고 그렇게 똑 부러지게 말도 못 해요. (웃음) 화상이 같은 면은 없느냐고요? 전혀요. 화상이는 시영 언니가 찰떡이에요. 물론 배우로서 화상처럼 톡톡 튀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지만, 화상은 시영 언니만큼 잘할 자신이 없어요."
전혜빈은 함께한 '가족' 중에서도 유준상에게 남다른 마음을 표현했다.
그는 "전작 '조작'에서도 만났고, 같은 소속사 식구이기도 했던 오빠에게는 무조건적인 애정이 생겼다"라며 "풍상의 짐을 덜어주려고 고군분투한 장면들은 정말 진심으로 찍었다"라고 말했다.
실제 전혜빈은 장녀다. 그는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있는데 어릴 때는 한 명이 피가 터져야 끝날 정도로 만날 싸웠다. 그런데 동생이 결혼할 때가 되니 서로 의지하게 됐다. 무조건 내 편은 결국 가족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왜그래 풍상씨'가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에서 인기를 끈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니겠냐고 그는 분석했다.
2002년 그룹 LUV로 데뷔한 전혜빈은 이후 배우로 전향,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갈수록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픔도 많았다고 그는 고백했다.
"어릴 때 가수로 데뷔해 예능에 자주 출연하면서 이미지도 많이 소모됐고, 하고 싶은 연기를 못하게 된 날도 많았어요. 부당한 상황도 많이 겪었고, 독립 후에는 2년간 혼자 일하면서 사회와도 부딪혔고요. 너덜너덜해져서 '이걸 하지 말아야 하나' 고통스러웠던 순간에도 포기 않고 꿋꿋이 버텨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좋은 작품도 만나고, 행복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슬럼프가 오겠지만 그때마다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을 거예요. 데뷔 17년, 이제 겨우 연기가 좀 뭔지 알게 되는 걸요."
lis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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