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드러나는 범행의 흔적들…추가범죄 의혹 등 풀릴듯
(안양=연합뉴스) 강영훈 류수현 기자 = '이희진(33) 씨 부모살해' 사건은 최근 발생한 여러 가지 유형의 강력사건 중에서도 의문투성이의 미스터리 사건으로 주목을 받는다.
사건발생과 시신발견 시점 사이의 격차, 4명의 범죄가담자 가운데 1명만 검거되고 나머지 3명은 중국으로 도망친 점, 범죄동기의 불투명성, 증거인멸의 허술함, 주범격 피의자의 피살자 '코스프레', 피의자들간 살인책임 떠넘기기 등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는 일들의 '종합세트'다.
그러나 "모든 범죄는 흔적은 남긴다"는 격언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흔적'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 가운데 슈퍼카 부가티 매매증서의 등장은 그간 이음새가 빠져있던 퍼즐조각을 맞추는데 결정적인 흔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도피하거나 증거인멸 행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오히려 유족을 만나는 등 상식 밖의 행동 패턴을 보였다.
사건 당일 부랴부랴 중국 칭다오로 출국한 공범 3명의 행동과 비교했을 때 국내에서 지낸 그의 행적은 의문을 사기 충분했지만, 지금까지 그 이유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나오지 않았다.
김 씨는 이 씨 부모살해와 5억원이 든 돈 가방을 강탈한 혐의에 대해 '우연'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은 그동안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김 씨의 진술을 하나둘씩 깨뜨릴 계획이다.
▲사건의 발단 = 이 씨의 부모살해 사건이 밝혀진 건 112 실종 신고가 실마리가 됐다.
서울에 사는 이 씨의 동생은 지난 16일 오후 4시쯤 "부모님과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그동안 어머니와 카카오톡을 통해 연락은 됐지만, 전화 연결은 통 안 됐다.
부모가 거주하는 경기 안양시의 한 아파트를 찾았을 때 현관문은 굳게 잠겨있었고, 비밀번호는 바뀐 상태였다.
이 씨의 동생은 어머니가 카카오톡으로 알려준 바뀐 비밀번호로 문을 열려고 했으나 이는 잘못된 번호였고, 결국 집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후 어머니와 카카오톡 연락도 끊기자 경찰에 실종신고를 한 것이다.
▲범죄 확인과 피의자 추적 = 신고를 접수한 경찰이 신고자, 소방 관계자들과 함께 문을 개방하고 들여다본 내부는 별다른 흔적 없이 깨끗했다.
하지만 장롱 안에서 어머니(58)의 시신이 발견됐다.
곧바로 경찰은 실종사건을 강력사건으로 전환하고 수사에 나섰다.
경찰이 아파트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분석한 결과 범인으로 추정되는 남성 4명이 3주 전 영상에 찍혔다.
김 씨와 중국 동포 A(33) 씨 등 공범 3명이었다.
영상을 보니 이들은 지난달 25일 오후 3시 51분께 이 씨 부부가 들어오기 15분 전 아파트 입구로 들어갔다.
이 씨 부부는 둘째 아들이 슈퍼카인 부가티 차량을 판매하고 받은 대금 중 일부인 5억원이 든 보스톤백을 갖고 있었다.
이 씨의 동생은 당시 차량 판매대금 15억원 중 5억원을 가방에 담아 부모에게 전달했고, 남은 10억원은 계좌로 송금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가티 매매증서의 발견 = 이때 보스톤백 안에 차량 매매증서가 들어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서류를 발견한 김 씨가 해외로 도주하지 않고 국내에 3주 동안을 머물렀던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되는 대목이다.
이후 집 안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경찰은 이날 김 씨 등이 부부를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씨 등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자신들을 경찰관이라고 속인 다음 집에 침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범 3명은 범행 당일 오후 6시 10분께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왔다.
김 씨는 다음날인 지난달 26일 오전 3시 30분께 대리기사를 불러 이 씨의 아버지(62) 소유 벤츠 차량을 운전하도록 한 다음 평택시 창고 인근에 주차하도록 요구했다.
이튿날 오전 김 씨는 이삿짐센터를 불러 이 씨 아버지의 시신이 든 냉장고를 베란다를 통해 밖으로 빼내 평택시 창고로 옮겼다.
냉장고를 옮긴 김 씨는 15분 뒤 자신도 아파트를 나갔다.
▲피의자 김씨의 '코스프레' = 이때 김 씨는 이 씨의 어머니 휴대전화를 챙겨 어머니인 척 한동안 이 씨의 동생과 카카오톡을 주고받았다.
이 씨 동생이 어머니와 주고받은 줄 알았던 카카오톡 메시지는 김 씨가 꾸민 짓이었다.
어머니 행세를 하던 김 씨는 급기야 "아들아.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가 있으니 만나봐라"는 식으로 말하고서 자신이 그 사업가인 척 이 씨 동생과 약속을 잡고 실제 만나기까지 했다.
경찰은 이 자리에서 김 씨가 이 씨의 동생에게 사업을 제안하며 추가범행을 하려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운 듯 보였던 김 씨는 이 씨 부부 실종신고 하루 뒤인 지난 17일 오후 3시 17분께 수원시의 한 편의점 앞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이 씨 아버지 시신은 당일 오후 4시께 평택 창고에서 발견됐다.
▲중국동포 모집 등 범행의 준비 = 김 씨는 이번 범행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최소 사건 발생 10여일 전부터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지난달 16일 인터넷 구직사이트에 '서울·경기지역에서 활동하실 팀원을 모집합니다'는 제목으로 공범을 모집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씨는 월 급여를 300만∼1천만을 지급하겠다고 했고, 군인 출신과 운동선수, 깡 있는 분을 우대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현재 강도살인 등 혐의로 구속된 김 씨는 "내가 죽인 게 아니다"며 살해 등 범행을 주도한 건 공범들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한편 범행 당일 비행기 티켓을 끊어 중국 칭다오로 도주한 공범 3명에 대해선 현재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이들 중 한 명은 최근 지인에게 중국판 카카오톡인 위챗 메시지를 보내 "경호 일을 하는 줄 알고 갔다가 일이 벌어진 것"이라며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발생해 황급히 중국으로 돌아왔다"고 주장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내주 중 수사를 마무리해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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