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보고서 지연 제출도 속출…"新외감법에 보수적 감사"

입력 2019-03-24 08:03  

감사보고서 지연 제출도 속출…"新외감법에 보수적 감사"
회계사들 "정확도 높아졌지만 비효율적…피감기업과 갈등 늘어"

(서울=연합뉴스) 조민정 임미나 기자 = 올해 상장사들의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다트)에는 지난 21일 하루에만 무려 40건의 지연 공시가 올라왔다.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22일 현재 감사보고서 제출 시한을 넘기고도 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한 기업은 코스피 12곳, 코스닥 37곳, 코넥스 9곳 등 총 58곳에 달했다.
감사보고서는 외부감사인이 기업의 재무제표가 공정하게 작성되었는지 살펴본 뒤 이에 대한 의견을 담아 회사에 제출하는 것으로, 정기주주총회 1주일 전까지 제출해야 한다.
감사보고서의 지연 제출은 통상 기업이 감사인에게 관련 재무 자료를 제때 제출하지 않거나 최종 감사의견을 두고 기업과 감사인 간에 의견 상충이 있을 경우 발생한다. 감사보고서 지연 제출 기업 중 비적정 감사의견이 무더기로 나올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로 최근 아시아나항공의 경우도 감사보고서 제출을 늦추다가 결국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 충당금 등에 대한 회계법인과의 의견 차이가 원인으로 전해졌다.
감사인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대해 '적정'이나 '한정', '부적정', '의견거절' 같은 비정적 의견을 낼 수 있는데, 한정 의견은 감사인이 감사를 벌이면서 자료 부족 등의 이유로 감사 범위가 제한될 때 제시하는 의견이다.
그동안 비적정 감사의견은 실질심사 없이 상장폐지가 결정될 만큼 중대한 하자로 간주했다.
다만 금융위원회가 최근 시장의 우려 등을 반영해 유가증권시장·코스닥 상장규정을 개정한 덕에 올해 감사보고서부터는 비적정 의견을 받아도 곧바로 재감사를 요구하지 않고 다음 연도 감사의견을 기준으로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다음 연도에도 감사의견이 비적정으로 나오면 정리매매 절차를 거쳐 상장 폐지되지만, 적정으로 의견이 바뀌면 실질심사를 거쳐 상장유지 또는 폐지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다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감사의견 비적정 시 주식 매매거래를 정지하는 현행 제도는 유지된다. 또 다음 연도의 감사는 증권선물위원회가 정해주는 지정감사인의 감사를 받게 된다
올해 감사보고서 지연 제출이 이처럼 속출하는 이유는 2018회계연도 감사보고서부터 적용되는 개정 외부감사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외감법은 2015년 대우조선해양[042660]의 분식회계 사건을 배경으로 탄생한 만큼 감사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그 책임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장사나 소유·경영 미분리 대형 비상장 주식회사는 6년간 감사인을 자유 선임한 뒤 3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하는 감사인을 선임해야 하는 주기적 지정 감사제가 그 예다.
새로운 환경에서 회계법인은 지정감사인이 과거의 재무제표를 꼼꼼히 살피다가 과거 재무제표에서 오류를 발견하면 경중에 따라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올해 감사가 전에 없이 깐깐해졌다는 것이다.
대형법인에 근무하는 한 회계사도 "과거에는 자료가 조금 미비해도 어느 정도 확인이 되면 절차를 밟아 감사를 마무리했는데 올해는 자료가 충분치 않으면 바로 감사보고서 지연 제출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또 회계법인 내부검토기구인 심리실이 신중한 검토에 나서면서 감사보고서 제출에 시간이 한층 더 소요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대형 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는 "당국이 '재무제표 대리작성 금지'를 강조하면서 검토 중 아주 작은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피감기업에 통보하고 스스로 수정하도록 하면서 수차례 검토와 재수정을 거쳐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는 "올해 금융상품 인식에 대한 회계기준서(K-IFRS 1109호) 도입으로 기업이 기준 적용에 어려움을 겪은 것도 감사보고서 지연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대형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외감법 개정 내용이 2018회계연도 감사보고서부터 적용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고 충분하게 감사절차를 수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불만도 없지 않다. 감사 실무를 담당하는 한 회계사는 "감사업무는 합리적인 선에서 주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지금 업계 분위기는 무조건 모든 항목을 보수적으로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정확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비효율적인 측면도 크고 피감기업과의 갈등 상황도 늘었다"고 말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기적 지정 감사제 도입으로 다른 감사인이 이전 재무제표를 면밀히 살핀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면서 감사가 더 신중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며 "기업과 감사인의 관계와 업무수행 변화에 익숙해지면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도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감사인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자료 제출을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등의 부당행위는 근절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chomj@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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