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철강 등 6조4천억 규모 사업 계약도 체결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이탈리아가 중국의 확장 정책에 대한 서방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참여를 공식화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23일(현지시간) 로마의 총리궁에서 이탈리아를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서명식을 개최했다.
이로써, 이탈리아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일대일로에 동참하는 최초의 국가가 됐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 전쟁을 벌이고, 유럽연합(EU)으로부터는 견제가 강화되는 와중에 서방의 핵심 일원인 이탈리아를 일대일로에 끌어들이는 성과를 거두게 된 것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의 가세는 그동안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에서는 동유럽과 그리스, 포르투갈 등 비주류 국가에 국한되던 일대일로가 유럽 선진국까지 확대되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판 실크로드'로 불리는 일대일로는 중국 주도로 아시아, 유럽, 남미 등 전 세계의 무역·교통망을 연결해 경제 벨트를 구축하려는 구상으로, 시진핑 주석의 대표적인 외교 정책으로 꼽힌다.
이날 MOU 체결식에서는 이탈리아 측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강화에 앞장서 온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 중국 쪽에서는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이 양국을 대표해 서명자로 각각 나섰다.
양국의 핵심 관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서명이 끝나자 양측에서는 우렁찬 박수가 길게 이어졌고, 콘테 총리와 시 주석은 서로의 손을 맞잡고 오랜 악수를 했다.
콘테 총리는 "양국은 (일대일로 MOU 체결을 계기로)더 효율적이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자"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날 서명식에는 현재 이탈리아 정치인 중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연립정부의 실세 마테오 살비니 부총리 겸 내무장관은 불참했다.
전날 대통령궁에서 시 주석을 위해 베푼 국빈 만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살비니 부총리는 북부 체르놉비오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시진핑 주석의 방문과 동등한 조건에서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은 기쁘지만, 중국이 '자유 시장'을 갖춘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일대일로 MOU 체결에 못마땅함을 드러냈다.
이탈리아와 중국은 이날 일대일로 양해각서를 체결한 것 외에 에너지, 철강 등의 사업 분야에서 10여 건의 거래에 대한 서명도 완료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대일로 양해각서 내용과 양국 사업체 간 사이의 구체적인 계약 사항에 대해서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현지 언론은 계약 규모가 50억 유로(약 6조4천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하고 있다.
한편, 올해 첫 해외 순방지인 로마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MOU 서명이라는 큰 전리품을 챙긴 시진핑 주석은 이탈리아 공식 방문을 마무리 짓고, 개인적인 일정을 보내기 위해 오후 비행기로 남부 시칠리아 섬으로 이동한다.
시 주석은 24일 시칠리아를 떠나 두 번째 순방국가인 모나코로 향한다.
앞서, 시 주석은 22일에는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과 만나 내년에 수교 50주년을 맞는 양국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일대일로를 매개로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의 교류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양국 정상은 이 자리에서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에 대한 미국과 EU 등 서방의 우려를 의식한 듯 "투자와 교역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또한 '일대일로'는 교역뿐 아니라 인권에 관한 대화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중국의 인권에 대해서도 간접적으로 거론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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