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결혼 후 남편이나 아내 쪽 성(姓)으로 통일토록 하는 일본의 부부동성(同姓) 제도에 또 합헌 판결이 내려졌다.
도쿄지법은 25일 아오노 요시히사(47) 씨 등 4명이 부부별성(別姓)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호적법에 없는 것은 위헌이라며 국가를 상대로 220만엔(약 2천2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일본 대법원인 최고재판소는 이미 2015년 12월 부부가 한 성을 갖도록 한 민법 제750조 규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도쿄 증시 상장업체인 '사이보우즈'를 경영하는 아오노 씨 등은 민법 조항이 아닌 호적법 조항의 미비를 문제 삼아 위헌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방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재판부는 '부부 동성 원칙'을 정한 민법 규정은 합헌이라며 법률상 다른 성이 되지 않도록 호적법이 별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는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판단했다.
아오노 사장은 2001년 결혼 후 호적상으로 아내 성을 따랐지만, 계약 체결 등 회사 일을 할 때는 본인 성을 사용했다. 이 과정에서 번거롭고 복잡한 일이 많이 생기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위헌 소송에 나섰다.
원고 측은 호적법은 일본인과 외국인이 결혼할 경우 같은 성으로 할지, 다른 성으로 할지 선택할 수 있게 하는데, 일본인끼리의 결혼에선 인정하지 않는 것이 헌법이 금지하는 불합리한 차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피고인 국가는 호적법은 민법 규정을 실현하는 방법을 정한 법률이라며 민법이 합헌인 이상 호적법도 합헌이라고 반박해 왔고, 도쿄지법은 국가의 손을 들어줬다.
앞서 '부부는 결혼하면 남편 또는 아내 성을 따른다'는 민법 규정이 양성평등을 보장하는 헌법에 위배된다며 민법 조항을 직접 겨냥해 제기됐던 소송도 최종적으로 원고 패소로 끝났다.
당시 최고재판소는 민법 규정에 남녀를 차별하는 불평등한 요소가 없다며 가족이 같은 성을 쓰는 것이 일본 사회에 정착한 만큼 합헌이라는 첫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부부동성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데다가 관련 소송도 잇따라 제기돼 이 제도가 얼마나 유지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일본에서 부부가 한 성을 쓰도록 제도화된 것은 사무라이 등 일정 수준 이상의 신분에만 허용됐던 성이 보편화한 1868년의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다.
현재 아내가 남편 쪽 성을 따르는 경우가 95%를 넘는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느는 추세에 맞춰 부부가 같은 성을 쓰도록 한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민법 개정안을 1996년 마련했지만 보수진영의 반대 여론에 밀려 입법화에는 이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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