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한가운데 '고속도로' 낸 최강듀오 "항상 의심하라"

입력 2019-03-26 06:00  

갤러리 한가운데 '고속도로' 낸 최강듀오 "항상 의심하라"
엘름그린&드라그셋, 국제갤러리서 4년만 한국 전시 '순응'
공간 정체성 흔들거나 관념 뒤집는 작업으로 명성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삼청동 큰길에서 살짝 물러난 갤러리 한가운데 '고속도로'가 났다. 속도와 방향을 알리는 검고 두꺼운 패널은 아스팔트 도로 일부를 떼어다 건 듯하다. 사람들은 바닥에 여기저기 설치된 교통표지판 사이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잠깐 멈칫한다. 천장에 가지런히 배열된 백색 조명은 터널의 그것을 떠오르게 한다.
갤러리를 바꿔놓은 이는 북유럽 출신으로 독일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마이클 엘름그린(58)과 잉가 드라그셋(50)이다. 2006년 영국 런던 서펜타인 갤러리를 병원으로 바꿔놓았고, 2015년 한국 첫 전시 무대인 삼성미술관 플라토를 공항으로 바꾸는 등 공간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작업이 이들의 주특기다.
1995년 결성된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한때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단짝'으로 불릴 정도로,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듀오다.
이들은 원래 시를 쓰거나 연극을 했고 정규 예술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건축,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을 자유롭게 오가며 일상과 사회를 '유쾌하게' 비튼 작업을 선보여 명성을 얻었다. 인적 뜸한 텍사스 사막 한복판에 프라다 매장을 재현하는가 하면, 번잡한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청량감 가득한 '반 고흐의 귀' 조형물을 설치해 대중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개막한 '순응'(Adaptations)은 플라토 이후 4년 만의 한국 개인전이다.
3관(K3)은 실제 아스팔트 도료를 칠해 각 무게가 900kg에 달하는 이른바 '고속도로 회화' 7점과 표지판 형태 조형물 3개로 채웠다.
관람객이 이들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속도로를 떠올린다는 사실은 일상의 시각언어가 우리 의식을 얼마나 지배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지하는 공간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듀오의 기본 철학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2관(K2)은 더 뜯어볼 구석이 많다. 발코니에 기댄 남성의 조형물인 '관찰자'는 "우리가 전시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남자로부터) 감상을 당하도록 뒤집은" 작업이다. 발코니라는 공공성과 개별성이 혼재하는 공간을 택하고, 고전 조각에 저렴한 트레이닝복을 입혀놓은 점도 흥미롭다.
갤러리 벽에 손가락을 찔러 넣은 듯한 조각 '의심'은 이탈리아 화가 카라바조 명작 '의심하는 도마'에서 영감받았다. 21일 전시장에서 만난 듀오는 "신체를 활용해 기존 사회와 예술 시스템을 의심하자는 것"이라면서 "사회를 항상 스스로 분석하고 의심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내가 실존하는 것인가를 묻는 담론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엘름그린·드라그셋 작업의 장점은 거창하거나 난해하지 않다는 데 있다.
"익숙한 일상 오브제를 사용해 (예술품이 아니라) 마치 현실에서 갖고 온 듯한 느낌을 주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일상을 재발견하길 바랍니다. 많은 일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법이니깐요."
전시는 4월 28일까지.
air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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