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1절 2주년 행사뒤 맨해튼 북부에 마련…미 동포들 나라잃은 한 달랜 곳
재건축거쳐 '역사공간' 재탄생…"독립운동 역사성 보존에 초점"
(뉴욕=연합뉴스) 이준서 특파원 = 일제에 저항하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2년 후인 1921년 3월 2일 저녁.
미국 뉴욕 맨해튼의 타임스 스퀘어에서 한 블록 떨어진 43번가의 신축건물 '더 타운 홀'(The Town Hall)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약 100명의 한인이 속속 모였다.
당시 뉴욕에 거주하는 한인이 수십명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미 동부권 한인들이 거의 모두 모인 셈이다.
서재필 박사는 3·1운동 2주년을 기념하는 '한인연합대회'의 개회를 선언했고 '기미 독립선언서'가 영문으로 낭독됐다.
한인뿐만 아니라 현지 미국인들까지 무려 1천300명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윌리엄 E. 메이슨(일리노이) 당시 연방하원의원도 자리에 참석해 한국의 독립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맨해튼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 한인들의 목소리는 당시 미국의 주류 언론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았다.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튿날인 1921년 3월 3일 자 2면에 '메이슨 의원, 일본의 한국 침략을 맹비난하다'(Mason raps japan for piracy in Korea)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메이슨 의원은 일본의 침략행위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미국 연방정부에 대해 한국의 독립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재필 박사가 사회를 봤고 헨리 정(독립운동가 정한경)이 첫 연설자로 나섰다
대한제국 왕립 영어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활동하면서 고종의 외교 조언자 역할을 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도 연설자로 나섰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2년 전 3·1운동의 열기를 되살린 한인연합대회는 동포들의 힘을 결집하고 독립 의지를 다잡는 원동력이 됐다.
한 달여 뒤 한인 연합대회를 주도한 동포들은 맨해튼 북부의 컬럼비아대와 맞닿은 115번가에 4층짜리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미국 동부지역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의 거점이자, 수많은 동포가 나라 잃은 슬픔을 나누고 독립 의지를 키웠던 뉴욕한인교회(The Korean Church and Institute)다.
컬럼비아대 유학생이었던 조병옥 등이 당시 민족공동체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점을 부각했고, 종교를 뛰어넘는 활동을 염두에 두고 교회의 영문 이름에도 'Institute'를 붙였다.
일제강점기 민족 지도자들이 뉴욕을 찾았을 때는 어김없이 뉴욕한인교회로 향했고, 3층과 4층에 마련된 숙소에 투숙했다. 교회에서 동지를 만나 결의를 다지고 독립을 위한 전략도 다듬었다.
작곡가 안익태가 애국가를 완성한 곳도 이 교회로 알려졌다. 당시 뉴욕한인교회 김준성(존 스타 김) 목사가 '한국 국가'(Korean National Anthem) 영문악보를 발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익태가 사용했던 에머슨 피아노는 교회 지하에 보관돼 있다.
1945년 해방까지 이곳을 무대로 삼은 독립운동 단체만 10여개에 달했다.
뉴욕한인공동회·한인공동회 중앙위원회·재미조선문화회·근화회·미주동부 대한인부인회·조국광복사업후원회·뉴욕재만동포옹호회 등 7개 단체가 창립됐고, 국민회 뉴욕지방회·동지회 뉴욕지부·흥사단 뉴욕지부 등 6개 단체가 뉴욕한인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만든 '한국학생회보(The Korean Student Bulletin)'과 '자유한국(The Free Korea)', 삼일신보, 우라키 등의 잡지·신문도 이 교회에서 편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과 뉴저지를 연결하는 조지워싱턴브리지 건설 현장을 비롯해 뉴욕 일대에서 막노동하면서 조국에 돌아갈 날을 그리워했던 노동자들도 이 교회에서 시름을 달랬다. 꼬깃꼬깃해진 달러를 호주머니에서 꺼내 독립운동자금으로 건네기도 했다.
컬럼비아대를 뒤로하고 115번가 내리막길을 따라 100m가량 내려가자, 뉴욕한인교회 부지가 나왔다.
재미 독립운동가들의 '망국의 한(恨)'을 달랬던 교회 건물은 노후화로 재건축에 들어간 상태다. 기존 건물은 1800년대 지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공사 현장에는 너댓명의 인부들이 부지런히 오갔다.
내리막길 너머로 허드슨강의 물줄기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교회 70년사(史)를 담아 1992년 출간한『강변에 앉아 울었노라』의 제목처럼, 허드슨강을 바라보며 울분을 달랬을 미주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듯했다.
이용보 담임목사는 "뉴욕 한인교회는 종교시설의 의미를 뛰어넘어 미국 동부 독립운동사의 구심점"이라고 말했다.
재건축 작업도 독립운동의 역사성을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춰 진행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4층의 기존 층수를 유지하면서 공간 활용도를 높이는 구조로 재탄생될 예정이다.
건물 앞쪽의 외벽은 최대한 기존 원형을 보존하는 동시에 1층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물품과 사진, 자료 등을 보관하는 '역사 기념관'이 들어서게 된다.
그 외에 신축건물의 구석구석에 미주 독립운동사를 되새기는 공간이 마련된다.
현재 한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과는 다소 떨어져 있는 데다 주차공간도 여의치 않다 보니, 재건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교회를 이전하면 어떻겠냐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이용보 목사는 "이곳은 독립운동가들의 숨결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라며 "이곳을 독립운동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유지·발전시키는 게 저희 임무가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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