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前 외환위기 시절 특례로 도입했다 64% 찬성에도 이사직 박탈
29일 한진칼 주총…석태수 이사 연임안·이사 자격 강화안 '표 대결'
(서울=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찬성표 66.6%를 확보하기에는 2.6% 부족했지만, 과반을 얻기 위한 게임이었다면 14.1%나 남아 연임에 성공했을 것이다."
조양호(70) 한진그룹 회장이 27일 대한항공[003490]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한 뒤 주총장에서 나온 말이다.
조 회장은 이날 주총에 상정된 사내이사 선임 의안 표결에서 찬성 64.09%, 반대 35.91%로 사내이사 자격을 상실했다.
과반을 훌쩍 넘는 지지를 받고도 이 의안이 부결된 것은 대한항공이 정관에서 이사 선임과 해임을 특별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경영권 박탈…주주 손에 밀려난 첫 총수 / 연합뉴스 (Yonhapnews)
특별결의사항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된다.
대한항공이 이사 선임·해임안을 특별결의사항으로 정한 것은 이례적인 것이다.
대다수 상장 기업은 같은 사안을 일반결의사항으로 분류해 주총 참석 주주 과반의 동의만 얻으면 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게 하고 있다.
당장 오는 29일 주주총회를 여는 한진그룹 지주회사 한진칼도 이사 선임·해임안을 일반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이 회사는 1999년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 선임·해임안을 일반결의사항에서 특별결의사항으로 바꿨다.
1997∼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국내기업 주가가 폭락하고 자본시장이 개방되면서 해외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성행하자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이처럼 정관을 변경했다는 게 대한항공의 설명이다.
20년 전 경영권 강화를 위해 취했던 조치가 20년 뒤 조 회장 사내이사 연임에 발목을 잡은 셈이다.
오는 29일 한진칼 주총에서는 조 회장 측근으로 분류되는 석태수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과 국민연금이 제안한 '이사 자격 강화' 안건 등이 표결에 부쳐진다.
한진칼은 이사 선임안은 일반결의사항으로, 정관 변경은 특별결의사항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사 자격 강화' 안건은 출석 주주 3분의 1 이상이 반대하면 부결되기 때문에 조 회장 측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 회장 등 특수관계인은 한진칼 지분 28.93%를 갖고 있다.
앞서 국민연금은 주주제안을 통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된 이사는 결원으로 본다'는 정관 변경안을 제안했다.
이 안건이 통과되면 현재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 회장이 재판 결과에 따라 이사 자격 박탈 등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이번 주총에서 통과가 사실상 어렵다.
석 대표 연임안은 출석 주주 과반의 찬성이 있어야 통과된다.
한진칼 2대 주주(10.71%)인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반대표를 던질 예정이지만 조 회장과 조 회장 측의 우호 지분을 고려하면 이 역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 주총 안건과 달리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 등 의결권 자문사들이 석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안에 찬성을 권고한 것도 조 회장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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