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철회 트럼프 트윗으로 `협상 유지' 트럼프-'제재 강화' 볼턴 간극 부각
"폼페이오-트럼프 관계는 키신저-닉슨에 비견돼"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질러 놓은 것을 수습하는 해결사(problem-solver)이고,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은 트럼프의 모호한 트윗을 해석해 주는 수석 통역사(chief translator)이다.
각각 최근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폼페이오와 인터뷰한 기사와 워싱턴 포스트가 볼턴의 역할을 분석한 기사에서 내놓은 진단이다.
디 애틀랜틱 4월호도 볼턴과 인터뷰를 토대로 한 분석 기사에서 종래 기준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의 지시를 행정부 관련 부서에 구체적으로 전달하거나 대외적으로 설명해주는 통역사로 볼턴을 규정했다.
이들 매체가 볼턴을 트럼프의 전달자(messenger)라는 표현 대신 통역사, 해석자라고 규정한 것은 볼턴이 트럼프의 뜻을 '정직하게' 옮기지 않는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트럼프가 무슨 말을 하면, 볼턴은 그에 동의하고는, 트럼프의 말을 반대로 재해석해, 재해석한 대로 정책을 추진하는 식의 리듬이 반복된다"라고 애틀랜틱은 설명했다.
볼턴의 통역엔 트럼프의 말을 재해석해 트럼프가 아닌 볼턴 자신의 정책을 끼워 넣는다는 게 볼턴에 대해 논하는 평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폼페이오는 "제재 유지", 볼턴은 "제재 강화"
뒤처리 해결사로서 폼페이오와 해석자로서 볼턴의 역할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실패로 끝난 후 두 사람이 각각 보인 언행에서도 드러난다.
폼페이오는 합의 실패 이후에도 대북 협상에 대해 트럼프의 긍정적 기조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북 외교정책이 여전히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이미지 유지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대북 제재를 말할 때에도 제재 `유지'에서 멈춘다. 볼턴식으로 추가 제재를 시사하며 제재 `강화'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이에 비해 볼턴은 폼페이오의 영역이던 북핵 문제를 꿰차고 나서 폼페이오보다 더 활발하게 `전부 아니면 전무' 또는 '최대 압박' 방식의 해법을 외쳐왔다. 추가 제재에 트럼프가 제동을 걸기전까지는.
'리비아'라는 말만 하지 않을 뿐 한 번도 포기 의사를 밝히지 않은 리비아식 해법이다.
트럼프의 긍정적인 기조에 대한 질문에는 적극적인 동의를 피하고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한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는 식의 답변으로 빠져나간다.
볼턴은 특히 지난 3일 CBS뉴스와 인터뷰에선 북한이 제재 대상 석탄과 석유 등을 해상에서 환적하는 것을 막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밝힘으로써 공해상에서 의심스러운 북한 선박에 대한 강제 검색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낳았다.
볼턴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담당 차관으로서 북한을 겨냥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주도한 전력이 있다.
볼턴의 이런 행보는 트럼프가 하노이 회담장에서 걸어 나온 후 북한의 제재 해제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제재 `유지'를 말한 것을 볼턴식으로 재해석해 통역한 것이다.
◇트럼프, 볼턴식 통역에 제동
트럼프는 지난 22일(현지시간) 트윗을 통해 북한에 대한 추가 제재를 철회토록 지시했다고 밝힘으로써 볼턴식 재해석에 제동을 걸었다.
볼턴으로선 북한에 리비아식 해법이 통하면 망외의 소득이고, 그렇지 않고 대북 협상이 결렬돼 대북 타격론이 힘을 받는 상황이 오더라도 역시 북한과 협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실현된다는 게 그의 셈법이다.
마침 볼턴의 국가안보보좌관 취임 1주년(4월)을 앞둔 시점까지 겹쳐, 이런 볼턴에 대한 반대·견제론이 최근 다시 제기되기 시작했다.
볼턴의 제재 강화론이 엄포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근본적인 강경 노선으로의 회귀라고 북한이 최종 판단을 내린다면, 북한이 미사일 시험으로 대응하고 나서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국장은 단언했다.
"북한은 절박한 상태"이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고 나올 것이라는 "미국측 가정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하는 수밖에" 달리 선택지가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부터 미국 정부 안팎에서 북한 지도부 심리와 행태를 주로 분석해온 고스 국장은 18일 의회 전문지 더 힐 기고문에서 "김정은이 (제재 강화때문에) 어떠한 경제적 시련에 직면하든, 미국한테 농락당해 핵무기를 포기했다는 정권 내부의 반발에 부닥칠 때 일어날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볼턴식 해법에 대한 회의론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물질, 미사일을 모두 먼저 포기하면 미국이 경제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실물 대 어음' 교환 방식은 북한 입장에선 수용하기 불가능하다고 본다.
미국의 외교안보계에선 볼턴에 대해, 미국이 대외적으로 맺는 합의나 협약을 만들기보다는 파괴하는 데 선수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볼턴을 중심으로 한 트럼프 행정부 안팎에 있는 요구를 전부 관철하려는 최대주의자(maximalist)들은 하노이 회담 실패의 `성과'로 북한의 완전한 핵포기를 끌어내는 데는 압박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깨달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이 맞다면 북한도 회담장을 빈손으로 나오면서 같은 확신을 갖게 됐을 것이다.
디 애틀랜틱은 지난 16일 북한 역시 "핵무기고를 더 늘려(미국을 압박해)야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에 미치지 않는 안에도 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의 추가 제재 철회 지시는 이같이 이미 힘이 빠진 협상 동력을 그나마 유지하기 위해선 `제재 강화 대 위성·미사일 발사'의 충돌 상황을 방지하려는 뜻으로 읽힌다.디펜스 프라이오리티스의 대니얼 데이비스 선임연구원은 지난 18일 내셔널 인터리스트 기고문에서 하노이 회담 후 한국의 소식통들과 "북한 관리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다른 소식통과 대화해봤더니 한국 정부가 대외적으론 현 상황을 비교적 좋게 포장하고 있지만 "막후에선 이보다 훨씬 비관적"이라고 전했다.
볼턴의 대북 접근법에 회의적인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은 "완벽한 것을 좋은 것의 적으로 만들지 말라"라는 경구로 요약된다. 완벽한 결과를 추구하다가 비교적 좋은 결과를 얻을 기회마저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트럼프와 볼턴, 아직은 서로 필요한 관계
뉴욕타임스 매거진은 폼페이오가 트럼프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해 "오랫만에, 키신저와 닉슨 간 관계에 비견될 만큼 대통령과 긴밀한 유대를 형성한 국무장관"이라고 평했다.
오바마 대통령 때 힐러리 클린턴과 존 케리 두 국무장관은 거물급임에도 오바마의 핵심 측근들을 제어하기 힘들었던 것과 달리, 폼페이오는 트럼프와 돈독한 관계를 자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육사 출신의 폼페이오는 국무부에 대해서도, 군부대 지휘관이 부대 임무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 군대 용어인 "사령관의 의지(intention)"라는 표현을 즐겨 쓰며 이의 실현을 위한 단결과 복종을 주문하고 있다.
해결사로서 폼페이오는 트럼프 외교의 브랜드를 "검약한 매파(frugal-hawk)"로 만들어냈다고 이 매체는 말했다.
돈을 쓰기를 꺼리는 공화당내 신종 매파인 이들은 "말은 거칠되, 전쟁은 피하고, 적들은 경제 제재로 혼내주고 동맹들엔 방위비 부담을 안기는" 짠내 매파다.
미국식 민주주의의 확산을 내세워 해외 군사 개입을 주저하지 않고 그에 더해 그곳에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는 이념에 불타는 네오콘과는 다른 매파다.
"북한은 (이들에게) 이란과 마찬가지로 하급 중에서도 최하급의 `깡패 정권'이지만 이란보다 발전한 핵프로그램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핵시험을 중단하고 핵포기를 얘기하는 대가로 (이란과 달리) 임시 통행증을 부여받았다"고 이 매체는 말했다.
이에 비해 볼턴은 전임자인 허버트 맥매스터보다는 트럼프와 마음이 맞지만 "필연적으로, 스타일과 실질 내용 양면에서 트럼프와 불일치하게 될 것"이라고 디 애틀랜틱의 인터뷰 기사는 예상했다.
이 매체는 볼턴이 시리아 문제 등에서 트럼프의 외교적 파국을 막는 역할도 했다고 비교적 호의적 평가를 하면서도 "변함없는 냉전 전사"인 볼턴과 고립주의자인 트럼프, "언사 하나하나가 정밀하게 계산된" 볼턴과 "자신 두뇌의 전두엽도 상의 없이 말하는 듯한" 트럼프 식으로 대비시켰다.
볼턴은 미국의 피와 돈을 들여 타국에 민주주의 국가를 전파한다는 이념은 없다는 점에서 네오콘이 아닐 수 있지만, 전쟁을 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갈라진다.
디 애틀랜틱은 "언젠가는 볼터니즘과 트럼피즘간 틈이 너무 크게 벌어져, 양쪽에 걸쳐 있는 볼턴의 가랑이가 찢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27일자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지난주 국가안보회의 회의에서 중국 해운사 2곳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때 트럼프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백악관 비서실 측의 반대에 볼턴은 자신이 트럼프를 더 잘 안다며 밀어붙였다.
재무부의 제재 발표 후 볼턴은 트윗을 통해 이 조치를 높이 평가하며 "해운업계는 북한의 불법 환적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으나 트럼프의 철회 지시 트윗으로 볼턴과 트럼프 간 간극이 더욱 부각되게 됐다.
볼턴은 그러나 시리아 정책 등을 둘러싸고 트럼프와 이견이 깊어지자 사표를 던진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스타일은 아니다.
하노이 정상회담 직전 북미 정상 간 친교 만찬 때 만찬장 논의를 망칠까 봐 비서실에 의해 이 자리에서 배제당하는 굴욕도 겪었다.
하지만 이란, 시리아, 러시아, 베네수엘라, 군축,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북한 문제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현안들에서 자신의 의제들을 관철시키고 있는데 그것을 가능케 한 국가안보보조관 자리를 박차고 나설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 1년간 볼턴의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족적에 대해 워싱턴 포스트는 "막대한 영향력과 대북 정책 등 소수 눈에 띄는 경우에서 그 영향력의 한계"라고 논평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트럼프도 볼턴의 교체를 검토하는 징후가 없다. 트럼프는 볼턴이 '미국 우선' 기조와 일치하지 않는 독자적인 외교정책을 추구하고 있다고 때때로 책망하고 북한과 중동에 대한 볼턴의 발언을 질책하기도 하고 있으나 그뿐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워싱턴의 정치전문 매체 워싱턴먼스리닷컴은 24일 "트럼프는 볼턴의 콧수염은 질색이지만 위압적인 태도는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거친 사나이' 이미지를 볼턴이 투사해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폼페이오는 트럼프의 제재 철회 트윗으로 인해 심대한 충격을 받은 미국의 제재 체제를 어떻게 수리할 것이며, 볼턴은 트럼프의 트윗을 어떻게 통역할지 주목된다.
yd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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