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에게 넘어간 친일재산은 국고 환수 대상서 제외
600억원대 추산 이완용 재산 대표적…"친일재산 환수 상설기구 설치해야"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이곳은 친일파 민영은의 일부 후손들로부터 시민 여러분이 지켜낸 우리의 땅입니다'
'친일파 민영은 후손들의 토지 소송에 대한 청주시민대책위원회'가 2014년 3월 1일 민영은 땅찾기 소송에서 승소한 것을 기념해 충북 청주시 상당사거리 옆 보도에 설치한 동판에 쓰인 글귀다.
민영은은 1905년 6월 충주 농공은행 설립 위원 등으로 활동한 대표적 친일파다.
하지만, 민영은의 후손 5명은 2011년 3월 돌연 청주시를 상대로 도심 속 알짜배기 땅 12필지(총 1천894.8㎡)를 내놓으라고 소송을 냈다.
시민들이 수십 년간 자유롭게 이용해 온 도로를 철거하고, 땅을 인도하라는 것이었다. 토지 대장상 이 땅의 소유자가 민영은으로 돼 있어서다.
1심 재판부는 2012년 11월 토지대장을 근거로 한 소유권을 인정, 민영은 후손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1년 뒤에 이뤄진 항소심 재판 결과는 달랐다.
청주지법 민사항소1부(이영욱 부장판사)는 "문제의 땅이 친일재산으로 추정되는 만큼 국가 소유로 귀속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원심을 뒤집고 청주시의 손을 들어줬다.
거센 비난 여론을 의식한 민영은의 후손들이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면서 온 시민을 분노케 한 '친일파 재산 소유권소송'은 이렇게 끝났다.
재판이 마무리됐음에도 법무부가 문제의 땅을 국가로 귀속하는 데는 또다시 2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민영은 땅 찾기 소송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재산 조사위원회'(이하 친일재산조사위)가 규정한 '국고 환수 대상'에서 제외된 토지를 친일재산으로 인정한 첫 사례였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 숨어있는 친일파 재산 환수 조처의 마중물이 될 것이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친일재산 환수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껏 이뤄진 친일재산 환수는 2006년 8월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출범한 친일재산조사위 활동이 바탕이 됐다.
친일재산조사위는 2010년 7월 활동을 마감하기까지 만 4년간 친일파 168명의 토지 2천475필지, 약 1천300만㎡(공시지가 기준 1천267억원 상당)를 환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여의도(290만㎡)의 4.5배에 달하는 면적이다.
친일재산조사위 활동 이후 소송도 잇따랐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0년 7월 이후 현재까지 친일재산 환수 관련 소송 97건 중 96건이 종결됐고, 1건은 1심에서 정부 패소 판결 뒤 현재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종결된 소송 중 정부가 승소한 것은 93건이다.
하지만 아직도 상당한 규모의 친일재산이 국가에 귀속되지 않고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게 중론이다.
친일재산조사위 활동 당시 환수 대상이 비교적 추적이 쉬운 부동산에 국한된 데다 이미 제3자에게 처분된 토지는 환수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친일행위로 획득한 토지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환수 대상에서 제외된 땅도 많다.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완용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완용은 일제강점기 여의도 면적의 5.4배인 1천573만㎡(1천309필지)를 소유했다. 토지를 포함한 재산이 현재 가치로 600억원에 달했다.
하지만, 국가귀속이 결정된 땅은 1만928㎡(16필지)에 불과했다. 공시지가로 따져 7천만원 남짓이다.
이완용은 1920년 전후로 보유한 토지를 일본인 등에게 대거 팔아넘겨 엄청난 돈을 챙겼지만, 그 재산이 어디로 갔는지는 알 길이 없다.
이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친일재산 조사·자문·환수를 총괄하는 상설기구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친일재산조사위처럼 활동 시한이 정해진 임시기구로는 제대로 된 친일재산 환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한민국의 제헌 헌법은 매국 행위, 친일행위로 취득한 재산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이런 점에서 친일재산 환수는 국가의 신성한 의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일재산 환수는 민법적인 논리보다 상위법인 헌법정신에 맞춰져야 한다"며 "정치권 역시 입법 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인 친일재산 환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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