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인수로 부실화…금호타이어 두고 대립했던 산은에 SOS
(서울=연합뉴스) 고은지 기자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002년 형 고(故) 박정구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직을 맡은 지 17년 만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9년 구조조정 위기에 빠진 이후 그룹을 재건하겠다는 박 회장의 꿈도 금호타이어[073240] 인수 실패와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020560]의 회계 부실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결국 이루지 못하게 됐다.
1946년 고 박인천 회장이 창업해 고속버스와 운수업으로 사세를 키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80년대말 제2 민영항공 사업자로 선정되며 1990년대부터 아시아나항공을 필두로 수십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고 박인천 회장이 1984년 세상을 떠나자 첫째 아들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이 뒤를 이었고 1996년 둘째 동생인 고 박정구 회장, 2002년 셋째인 박삼구 회장으로 형제경영 체제가 이어졌다.
박 회장은 회장 취임 이후 공격적으로 회사 규모를 키웠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2006년 대우건설[047040]을 6조4천억원에,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4조1천억원에 인수하면서 재계 서열 7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은 부작용을 가져왔다.
재무상황이 악화와 글로벌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2009년 12월 금호산업[002990]과 금호타이어가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채권단과 구조조정 방식의 일종인 자율협약 절차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박 회장은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사이가 틀어졌고, 동생을 해임하고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퇴진하는 초강수를 뒀다.
채권단과 경영 정상화 합의에 따라 두 형제는 경영일선으로 복귀했고 2009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재매각한 뒤 계열사인 금호렌터카와 금호고속까지 매각하며 경영 정상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금호석유화학이 2012년 12월 자율협약에서 가장 먼저 졸업했고, 2014년 10월 금호산업이 채권단 지분을 매각하는 것과 동시에 워크아웃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타이어가 각각 자율협약과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주요 계열사가 회생하면서 박 회장은 그룹 재건에 도전했다.
우선 박 회장은 금호산업 채권단이 보유한 경영권 지분(50%+1주)을 사들이는 데 모든 힘을 쏟았다. 금호산업만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과 금호터미널 등 계열사를 모두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채권단과의 밀고 당기기 끝에 박 회장은 2015년 9월 24일 채권단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고 이날 인수대금을 완납함으로써 그룹을 다시 품에 안았다.
이후 박 회장은 그룹 재건의 '마지막 퍼즐'이었던 금호타이어 인수를 천명했지만, 이 도전은 오히려 그에게 독이 됐다.
박 회장은 2017년 9월 6천300억원대 금호타이어 자구안을 채권단에 제출했으나 시행 가능성이 작다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박 회장은 같은 해 9월 금호타이어 경영 포기를 공식 발표했고, 11월 재인수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히면서 사실상 그룹 재건 중단을 공식화했다.
당시 박 회장은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제 운수와 건설, 항공 부문 중심으로 경영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룹 재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내상을 입은 박 회장은 기내식 대란과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악화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더는 버티지 못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이 제출기한을 하루 넘긴 지난 22일 공시한 감사보고서가 감사의견 '한정'을 받은 것이 결정타가 됐다.
박 회장은 지난 27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을 만나 아시아나항공의 금융시장 조기 신뢰회복을 위해 산업은행에 협조를 요청하며 회장직 사퇴 의사를 전달했다.
일각에서는 산은이 지원 조건으로 그의 퇴진을 요구했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 과정에서 주채권단인 산은과 대립한 바 있다.
산은은 28일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이 회장은 박 회장이 일련의 사태에 대한 책임을 깊이 통감하고, 용퇴하기로 결정한 내용에 대해 확인했다"며 "회사 측이 시장신뢰를 회복하면 채권단도 정상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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