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본뜬 '#KuToo' 해시태그 등장, 서명운동도
체험 남성, "제대로 서기도 어렵더라. 계단 공포는 상상 이상"
(서울=연합뉴스) 이해영 기자 = 국내에서도 비슷하지만 일본에서는 젊은 여성들이 취업활동을 하거나 공식적인 행사에 참석할 때 펌프스라고 불리는 끈이나 고리가 없는 뒷굽이 높은 구두를 신는 게 일반적이다.
펌프스 착용은 사회적으로 일종의 예의범절로 간주되는 분위기다. 일부 직장에서는 여성에게 펌프스 착용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에서 최근 이런 분위기에 대한 비판이 잇따라 제기돼 사회적 관심사가 되고 있다.
지난달 도쿄도(東京都)내에서 열린 기업 합동취업설명회에 펌프스를 신고 참석했던 미야기(宮城)현 출신의 한 여대생(22)은 "취업세미나에서도, 구두가게에서도 펌프스 신으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불편하지만 몸가짐에 신경을 쓰는 회사도 있는 것 같아 할 수 없이 신었다"고 한다. 펌프스 착용이 채용에 영향을 줄까.
29일자 아사히(朝日)신문 기사에 따르면 채용설명회에 참가한 9개 기업의 채용담당자에게 물어본 결과 8개사는 "영향이 없다"고 대답했다. 인력파견회사의 한 남자사원(27)은 "너덜너덜한 신발을 신지 않는 등 청결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답한 기업의 30대 남성사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는지, 장소의 성격에 맞는 복장을 선택하는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는데 여성의 힐도 한가지 포인트"라고 말했다.
착용을 강요하는 직장도 있다. 배우겸 작가인 이시카와 유미(石川優?. 32)는 작년 4월 장의사 전문 인력파견회사에 등록했다.
파견처로부터 높이 5㎝ 이상의 힐 펌프스를 착용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남성사원들은 걷기 쉬워 보이는데 성별에 따라 바라지 않는 걸 강요하는건 성차별"이라고 지적했다.
이시카와가 지난 1월 트위터에 올린 글은 3만회 이상 리트윗됐다. 신발이라는 뜻의 '구쓰(靴)'와 고통이라는 뜻의 '구쓰(苦痛)'가 발음이 같은데 착안, 성폭력을 고발한 '미투'의 의미를 담은 '#KuToo' 해시태그도 둥장, 2월에는 인터넷 서명운동도 시작됐다.
남성도 문제 제기에 가세했다. IT(정보기술) 기업인 '벨페이스'의 인사홍보담당인 니시지마 유조(西島悠?. 31)는 하루 동안 힐을 신고 일을 해 봤다. 여성사원이 힐을 신고 영업외근을 하는 걸 힘들어하는 걸 보고 직접 체험해 보기 위해 높이 8㎝의 힐 펌프스를 구입해 신어보니 제대로 서기도 어려웠다. 계단에서 느끼는 공포는 상상 이상 이었다. 결국 힐이 도랑에 끼어 부러지고 말았다.
"여성이 외근영업이 아닌 사무직을 희망하는 게 이래서였구나". 체험을 토대로 이달 초 "당연시 해 온 것들이 정말 옳은건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기사를 구직 사이트에 올리자 평소의 6배인 6천건의 조회가 이뤄졌다.
복장에 신경을 많이 쓰는 전직 파일럿 출신은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해서는 안되는 업종에서는 복장이 단정한 사람을 선별하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이제 슬슬 바꿔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역사적으로는 여성만 힐을 신은 건 아니다. 히라요시 히로코(平芳裕子) 고베(神戶)대 교수에 따르면 18세기에는 상류층 남성들이 우아함과 위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유행해 프랑스왕 루이 14세가 흰색 스타킹과 빨간색 힐을 신은 초상화도 있다. 근대 이후 남자가 밖에서 일하고 여자가 가정을 지키는 역할분담이 이뤄지면서 이런 유행이 바뀌었다고 한다.
히라요시 교수는 "성별과 관련한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만큼 여성의 힐 착용에 의문이 제기되는 건 필연적"이라고 지적하고 "성별이 아니라 개인 각자가 자유롭게 용모를 꾸미는 관용적인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lhy5018@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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