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서 흑가면 쓴 게 인종차별?…佛 명문대, 공연 취소

입력 2019-03-29 16:48  

연극서 흑가면 쓴 게 인종차별?…佛 명문대, 공연 취소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프랑스의 명문 소르본 대학 극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던 고대 그리스 비극이 인종차별 논란에 휘말려 취소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소르본 대학측은 지난 25일 연례 그리스 비극 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아이스킬로스의 '탄원하는 여인들'의 공연장에서 학생들이 시위가 벌어지면서 논란이 커지자 이같이 결정했다.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나와 문제의 연극이 "아프리카 공포증, 식민주의,인종차별"을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극장으로 들어가려던 출연진들을 저지했다.
배우들이 검은 가면을 쓰고 출연하는 것이 이른바 '블랙페이스'에 해당한다는 것이 학생들의 주장이다. 블랙페이스란 노예제도가 잔존해있던 19세기에 백인 배우가 흑인 연기를 하면서 흑인의 신체적 특징을 극적으로 과장한 분장을 일컫는다.
소르본 대학의 웹사이트에 오른 행사 홍보 사진에는 짙은 피부로 분장한 여배우가 등장한다. 하지만 대학이나 극단측은 학생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학측은 고대 그리스의 전통에 따라 당시처럼 배우들이 검은 가면과 흰 가면을 쓰기로 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학측은 그러면서 "물리력으로 저지하고 출연진을 모욕하는 것은 대단히 심각하면서 예술적 자유에 대한 전혀 부당한 공격"이라고 밝혔다.
극단을 이끄는 필립 브뤼네 단장은 배우들이 블랙페이스가 아닌 가면을 착용하고 등장한다고 소개하면서 "이번 소동은 구릿빛'으로 분장한 여배우의 리허설 장면을 촬영한 사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배우들이 복수의 역할, 혹은 무대에 오를 수 없게 돼 있던 여성의 역할을 맡기 위해 다양한 가면을 착용하는 것이 상례였다. 또한 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관객을 배려하기 위해 다소 얼굴의 특징을 과장한 가면을 사용하기도 했다.
학생측의 입장은 강경했다. 프랑스흑인협회대표자회의(Cran)는 "소르본에서 벌어지는 식민주의 선동"이라는 제하의 비난 성명을 발표했고 전국대학생연합(UNEF)은 "사회, 특히 대학에서 온갖 형태의 블랙페이스를 사용하는 것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부측은 학생들을 꾸짖었다. 고등교육·연구 장관과 문화장관은 27일 공동 성명을 통해 "어이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모든 학구적 가치, 공화주의 원칙에 반하는, 대학내 표현와 창작의 자유에 대한 전례없는 공격"이라고 덧붙였다.
공연 취소를 결정한 소르본 대학측은 향후 새로운 버전의 '탄원하는 여인들'을 무대에 올릴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jsm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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