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부터 플레잉 감독…지휘봉 잡은 지 벌써 24년째
2016년 리그 제패 "선수들한테 핸드볼 바깥세상도 보라고 하죠"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 최근 흥국생명 박미희(56) 감독이 2018-2019시즌 프로배구 여자부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을 석권하며 국내 여성 지도자의 역사를 새롭게 썼다는 평을 듣고 있다.
많은 언론에서 "박미희 감독은 2016-2017시즌에도 흥국생명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어 국내 4대 프로스포츠에서 처음으로 정규리그 정상에 오른 여자 사령탑"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여성 지도자'로서 업적을 평가하는데 '4대 프로스포츠'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사실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가 '4대 프로스포츠'로 분류되지만 야구는 국내 여자 리그가 없고, 축구 역시 국내 리그인 WK리그가 프로가 아닌 실업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 지도자를 평가할 때 '4대 프로스포츠'보다는 국내에서 리그가 운영 중인 '단체 구기 종목'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이럴 경우 여자축구 실업리그와 프로농구, 프로배구에 역시 연중 실업리그가 진행 중인 핸드볼을 포함할 수 있다.
이 4개 리그의 팀당 정규리그 경기 수를 따져보면 농구가 35경기, 배구 30경기, 축구 28경기, 핸드볼 21경기 순이 된다.
실업인 축구와 핸드볼의 경기 수가 적지만 그렇다고 '농구·배구와 동일 잣대로 평가하기에 한참 모자란다'고 할 수도 없다.
통합 우승은 배구의 박미희 감독이 최초지만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각각 차지한 사례는 핸드볼에서 이전에 이미 있었다.
서울시청 임오경(48) 감독이 주인공으로 임 감독은 2014년 서울시청을 SK핸드볼 코리아리그 정규리그 1위에 올려놨고, 2016년에는 챔피언결정전 정상까지 밟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덴마크와 연장전에 이은 승부던지기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감동의 은메달'을 목에 건 임 감독은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2018-2019시즌 정규리그를 치르고 있는 임 감독은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박미희 선배님하고는 국가대표 선수회에서 친분이 있다"며 "특히 지난해 서울올림픽 3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몇 번 뵈었다"고 인연을 소개했다.
국가대표 선수회 여성 부회장도 맡고 있는 임 감독은 "배구, 농구 선후배들과 가깝게 지내는 편"이라며 "배구 조혜정 감독님도 처음 GS칼텍스 맡으시면서 제게 젊은 선수들과 소통 등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셨다"고 회상했다.
임 감독은 "프로인 농구, 배구는 코치나 지원 스태프가 핸드볼보다 더 많기 때문에 아마추어인 핸드볼은 감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더 많다"며 안 그래도 힘든 여성 사령탑 일이지만 핸드볼이 더 그렇다고 하소연했다.
또 농구와 배구는 여자팀이 6개지만 핸드볼은 8개로 더 많아 상대 분석이나 경기 준비에도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 사령탑의 장점에 관해 묻자 임 감독은 "아무래도 남자 감독들보다 여자 선수들과 조금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다"며 "흔히 여자 선수들이 여자 감독을 더 불편해하고, 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도 있지만 그런 것을 떨쳐버리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임 감독은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95년에 '플레잉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 선수 시절에 플레잉 감독에 선임돼 일본 무대에서 8년 연속 우승을 일궈내며 일찌감치 지도력을 인정받은 그는 "제가 24살 때부터 감독을 해서 그런지 저는 감독님 눈을 피해 놀아본 경험이 없다"며 "그래서 선수들에게 '핸드볼 말고 다른 것들도 좀 하라'고 권유하는 편"이라고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2008년 서울시청 지휘봉을 잡고 감독 생활을 시작한 임 감독은 "핸드볼 바깥세상을 자주 보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며 "은퇴 후의 준비도 닥쳐서 하지 말고 미리 해야 하고, 그러려면 대학 공부도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선수들에게 조언했다.
또 선수들의 '연애 사업'도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며 "연습복 입고 밖에 다니지 말고, 클럽 같은 데도 다니면서 문화생활도 즐겨야 한다. 성형수술도 하고 싶으면 하라는 것이 제 의견"이라고 덧붙였다.
임 감독은 "다만 선수들에게 바라는 것은 운동 시간에는 목숨 걸고 해달라는 것"이라며 "휴가를 주면 복귀할 때 몸 관리를 알아서 하고 들어오는 것을 선수들에게 주문한다"고 선수들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오랜 감독 경험으로 여자프로농구와 프로배구 팀 선수단 및 사무국을 대상으로 강연도 몇 차례 했다는 임 감독은 "종목을 막론하고 여성 지도자는 더 많아져야 한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여자 감독이 실패하면 '여자라서 안 된 것'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현역 시절 명성만 믿고 무모하게 덤비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쉬운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에 통합 우승까지 일궈내신 박미희 선배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며 "많은 희생을 할 각오가 되어 있고 시대적 변화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공부와 준비가 된 여성 지도자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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