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러-서방 대결 우크라서 대선투표…봄날씨속 시민들 투표소行

입력 2019-03-31 22:08  

[르포] 러-서방 대결 우크라서 대선투표…봄날씨속 시민들 투표소行
선거운동 기간 불어닥친 젤렌스키 열풍 투표소에서도 그대로 느껴져
39명 입후보속 포로셴코 대통령 등 3강 구도…"결선투표서 당선자 결정될 듯"

(키예프<우크라이나>=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31일(현지시간) 5년 임기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대선 투표가 치러진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긴 겨울이 지나고 영상 10도 이상의 따뜻한 봄 날씨가 찾아온 시내 거리는 나라의 가장 중요한 정치 행사 가운데 하나인 대선이 치러진다고 믿기엔 어려울 정도로 한산한 분위기였다.
차량 통행도 그렇게 잦지 않고 거리에 나온 가벼운 옷차림의 시민들도 따뜻한 봄볕을 즐기려는 듯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키예프 시내 '해상·수상 함대 학교'에 차려진 투표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투표소에선 이른 아침부터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려는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어린 딸을 데리고 투표장에 나온 율리야(마케팅 전문가)는 누구에게 투표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숨기지 않고 "젤렌스키"라고 답했다.


선거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이번 대선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한 코미디언 출신의 유력 후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에게 한표를 던졌다는 답이었다.
율리야는 "젤렌스키가 부패 구조에 빠지지 않았고 진실한 사람이며 그가 변화를 시도하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젤렌스키가 '연예인으로만 활동했을 뿐 정치 경험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는 반문엔 "경험이 없는 사람도 노력하면 경험을 쌓고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반박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유권자 중엔 이미 한번 대통령직을 수행해 국정 경험이 풍부한 페트로 포로셴코 대통령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선거운동 기간 불어닥친 젤렌스키 열풍은 투표소에서도 그대로 느껴졌다.
젤렌스키가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나타날 즈음인 오전 11시 무렵 투표소는 1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다.
밝은 표정의 젤렌스키는 아내와 함께 투표소에 나와 한표를 행사했다.
그는 투표에 이어 '누구에게 투표했는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매우 자격이 있는 후보에게 했다"고만 밝혔다.
젤렌스키는 "오늘 우리나라에선 부패가 없고 뇌물이 없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면서 "민주주의가 승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선에 도전하는 포로셴코 대통령도 이날 키예프 시내 '장교의 집'에 차려진 투표소를 찾아 가족들과 함께 투표한 뒤 "(나를 지지하는) 국민의 의사 표현이 지켜질 것"이라면서 "이는 유럽으로의 회귀와 유럽연합(EU) 및 나토 가입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자신이 집권 1기에서 추진한 유럽화 노선을 유권자들이 지지할 것이란 주장이었다.
또다른 대선 후보인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도 시내 다른 투표소를 찾아 남편과 함께 투표한 뒤 "우리는 성공적이고 번영하는 유럽 우크라이나로 발걸음을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옛 소련에 속한 동유럽 국가 우크라이나에서 실시된 이번 투표는 지난 2014년 '반러시아 친서방' 정권 교체 혁명(마이단 혁명)으로 친서방 세력이 집권한 이후 5년 만에 치러지는 것이다.
이날 오전 8시부터 수도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전역의 2만9천여개 투표소가 일제히 문을 열었다. 투표는 저녁 8시까지 진행된다.
우크라이나와 심각한 갈등 관계에 있는 러시아를 제외한 72개 외국에 차려진 101개 투표소에서도 투표가 진행된다. 전체적으로 약 3천만명이 유권자 등록을 했다.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선거 때마다 러시아 여러 도시에 설치해 왔던 투표소들을 폐쇄하는 조처를 했다.
러시아에 거주하는 약 300만명의 우크라이나 유권자들은 인근 국가인 조지아(러시아명 그루지야), 카자흐스탄, 핀란드 등에서 투표하도록 권고했다.
러시아는 국제기구와 외국 등에서 파견된 2천명 이상의 국제참관단에서도 빠졌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측의 참관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는 역대 최다인 39명이 입후보했다.
하지만 재선에 나선 포로셴코 현 대통령(53세), 세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티모셴코 전(前) 총리(58세), 인기 코미디언·배우 출신의 정치 신인 젤렌스키(41세)가 3강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2015년부터 방영된 인기 TV 정치 풍자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주인공인 대통령 역할을 맡아 '국민 배우'로 부상한 젤렌스키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며 돌풍을 일으켰다.
29일 발표된 키예프 사회학연구소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젤렌스키는 20.9%의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13.7%로 2위, 티모셴코 전 총리가 9.7%로 3위에 올랐다.
이에 앞서 공개된 현지 여론조사 전문기관 '레이팅'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26.6%가 젤렌스키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답했다.
포로셴코 대통령과 티모셴코 전 총리는 각각 17%를 얻는 데 그쳤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로 미뤄볼 때 1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자가 나오긴 어려워 결선투표에서 최종 당선자가 가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 선거법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2차 결선투표를 치러 다수 득표자가 당선된다.
결선투표는 오는 4월 21일로 잡혀 있다.
전문가들은 3명의 유력 후보 가운데 누가 당선되더라도 기존의 친서방 정책 노선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세 후보 모두 우크라이나의 유럽연합(EU)·나토 가입을 포함한 유럽화를 원칙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cj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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