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서 전통적 가족가치 옹호 회의…"시대착오적" 맞불 집회

입력 2019-03-31 21:05  

이탈리아서 전통적 가족가치 옹호 회의…"시대착오적" 맞불 집회
정치권도 양분…살비니 "아이낳는 사회 만들 것" vs 디 마이오 "중세 회귀?"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 북부 베로나가 낙태, 동성 결혼 등의 첨예한 이슈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얼룩졌다.
이곳에서 지난 29일부터 31일까지 전통적 가족 가치를 옹호하는 국제 행사가 열리자, 이를 옹호하는 단체들의 지지 집회와 페미니스트 단체와 동성애 옹호 단체 등의 대규모 맞불 집회가 어지럽게 이어진 것.


미국에 본부를 둔 세계가정회의(WCF)는 "자연적 질서 회복"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 29일부터 사흘 간 베로나에서 미국과 유럽, 아프리카 등지의 반(反)낙태, 반이혼, 반 동성애 활동가들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열였다.
기독교 가치를 지향하는 이 단체는 개막 이틀째인 30일에는 "낙태는 심장 박동을 멈춘다"는 문구와 함께 고무로 만들어진 10주 된 태아의 모형을 참가자들에게 나눠주는 등 낙태 반대 메시지를 설파하고,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결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등 사회가 전통적 가족 가치의 회복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이번 회의의 주요 연사들 가운데는 반(反)난민에 앞장서는 마테오 살비니 이탈리아 부총리 겸 내무장관, 미국 내에서 동성 결혼에 앞장서 반대하는 브라이언 브라운 WCF 회장, 동성애자를 테러 단체인 보코하람과 비교하는 나이지리아 활동가 테레사 오카포르, 동성애자에게 최대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는 반동성애 법안의 통과에 앞장 선 우간다 정치인 루시 아켈로 등이 포함됐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 모르몬교 등 보수적인 종교 지도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30일 회의장 바깥에서는 여성단체, 동성애 단체, 이탈리아 좌파 정당과 노조 등 70여 개 단체가 대규모 항의 집회를 열어 WCF 회의가 시대착오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약 2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활동가들은 "우리의 몸과 욕망은 우리가 결정한다"는 현수막을 들고,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저항하던 이탈리아인들이 즐겨 부르던 노래 '벨라 차오'를 합창하면서 도심을 행진했다.



시위에 참석한 한 여성단체의 대변인은 "이것은 단지 한 단체가 아닌 모두의 권리와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이라면서 "WCF는 종교가 아니라 정치적 권력을 지향하는 단체로, 우리는 이 위험한 억압을 수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회의를 놓고 이탈리아 정치권도 분열됐다.
베로나를 통치하는 극우 성향의 정당 '동맹'이 이번 회의를 후원한 가운데, 동맹의 대표인 살비니 부총리는 30일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야유 속에 연단에 올라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진 커플이 좀 더 많은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국가 정책의 우선 순위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나라는 죽어가는 나라"라며 "부총리로서의 5년의 임기를 마칠 때 안보, 일자리와 함께 출산율로도 심판을 받길 원한다"고 밝혔다.
살비니 부총리는 또한 대리모에 대해서도 "여성을 알을 품고, 아기를 낳는 기계로 만드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위"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이혼 경력이 있는 그는 "오늘 여기 온 것은 누군가의 권리를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동성애자나 동성 커플 등이 학교나 직장에서 차별받지 않는 것이 중요할 뿐 아니라, 여성이 남성에 종속적이어서는 안된다며 이번 회의의 주류 시각과는 선을 그었다.
동맹과 포퓰리즘 연합 정부를 구성한 집권 '오성운동'의 루이지 디 마이오 부총리 겸 노동산업장관은 "마치 중세로 돌아간 것 같다"며 이번 회의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좌파 정당 '자유와 평등' 소속의 라우라 볼드리니 전 하원의장 역시 "말도 안되는 회의"라며 개탄했다.
이번 WCF를 계기로 1978년 이뤄진 낙태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재점화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낙태 금지를 주장하고 있는 극우정당 포르차누오바(FN)는 이날 낙태 합법화를 계속 유지할지를 묻는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교황청은 WCF 회의의 내용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혀, 거리를 뒀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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