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소 바꿔 살인혐의 철회…피살자는 있지만 살인피고인은 '0'
(하노이·자카르타=연합뉴스) 민영규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 됐던 베트남 여성이 살인 혐의 대신 상해 혐의를 적용받아 다음 달 초에 석방된다.
1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법원은 이날 베트남 여성 도안 티 흐엉의 상해 혐의에 대해 징역 3년 4개월을 선고했다.
검찰이 이날 흐엉에 대해 살인 혐의 대신 위험한 무기 등을 이용한 상해 혐의로 공소를 변경했고, 흐엉이 즉각 상해 혐의를 인정한 데 따른 것이다.
현지 법령상 살인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사형을 선고하는 반면 상해 혐의는 최고 징역 10년에 처한다.
흐엉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와 함께 2017년 2월 13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왔다.
흐엉의 변호인은 "말레이시아 사법 시스템에서 통상적으로 감형이 이뤄진다"면서 "흐엉은 오는 5월 첫째 주에 석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흐엉은 판결 직후 "행복하다. 공정한 재판"이라며 "말레이시아 정부와 베트남 정부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법정에서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의 환호성이 터지기도 했다.
레 꾸이 꾸인 주말레이시아 베트남대사도 흐엉이 곧 석방된다는 소식에 말레이시아 정부에 감사한다는 뜻을 밝힌 뒤 "인도네시아 여성처럼 흐엉도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당국이 흐엉의 살인 혐의를 철회하고 상해죄를 적용한 것은 시티의 전격 공소를 취소하고, 석방한 지 3주 만이다.
이에 따라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해 말레이시아에서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는 피고인은 아무도 없게 됐다.
말레이시아 검찰이 흐엉에 대한 공소를 변경한 이유는 즉각 공개되지 않았다.
이들은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됐을 뿐이라면서 무죄를 주장해왔다.
검찰은 김정남을 살해할 당시 두 여성이 보인 모습이 '무고한 희생양'이란 본인들의 주장과 거리가 있다면서 이들이 '훈련된 암살자'라고 반박해 왔지만, 지난달 11일 갑작스레 입장을 전환해 시티에 대한 공소를 취소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장기간의 외교적 로비 끝에 시티를 석방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팜 빈 민 베트남 외무장관은 같은 달 12일 사이푸딘 압둘라 말레이시아 외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하고 공정한 재판과 흐엉의 석방을 요구했다.
말레이시아 검찰은 애초 시티와 달리 흐엉에 대해선 공소를 취소하지 않고 끝까지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베트남 정부가 자국 주재 말레이 대사를 초치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는 등 거세게 반발하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말레이시아 법원이 별도의 유무죄 선고 없이 시티를 석방한 것과 달리 흐엉에게 상해죄를 적용한 것은 김정남과의 신체 접촉 여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정남과 접촉이 없었던 시티와 달리 흐엉은 김정남의 등 뒤로 접근해 얼굴에 신경작용제를 바르는 모습이 공항 CCTV 화면에 잡혔기 때문이다.
한편, 시티와 흐엉에게 VX를 주고 김정남의 얼굴에 바르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리재남(59), 리지현(35), 홍송학(36), 오종길(57) 등 북한인 용의자 4명은 범행 직후 출국해 북한으로 도주했다.
북한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란 이름의 자국민이 단순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리재남 등 4명은 그가 숨진 시점에 우연히 같은 공항에 있었을 뿐이란 입장을 보여왔다.
youngk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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