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살해' 동남아 여성들, 정말 북한 공작원에 속았나
VX 반입경로, 김정남-미국 정보기관 접촉설 등도 수수께끼
(하노이·자카르타=연합뉴스) 민영규 황철환 특파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베트남인 여성 도안 티 흐엉이 1일 살인 혐의를 벗고 상해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다음 달 초 석방되게 됐다.
흐엉은 김정남 암살사건과 관련해 살인혐의로 구속재판을 받던 마지막 인물이다. 그와 함께 구속재판을 받던 유일한 피고인인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는 지난달 11일 공소취소와 함께 풀려났다.
말레이시아 사법당국이 사건의 배후에 대한 조사는 시작도 못 했는데 사건 발생 2년여 만에 관련 재판도 싱겁게 끝나 김정남 암살은 영구미제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산적해있다.
◇ 순진한 희생양인가, 잘 짜인 음모의 가담자인가
2017년 2월 13일 오전 9시(이하 현지시간)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 터미널에 들어선 김정남은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27·여)와 베트남 국적자 도안 티 흐엉(31·여)에게 앞뒤로 둘러싸였다.
시티가 김정남에게 말을 건 뒤 그를 향해 팔을 뻗었고, 흐엉은 그 틈을 타 뒤에서 손을 뻗어 김정남의 얼굴에 맹독성 화학무기인 VX 신경작용제를 발랐다.
불과 몇초 만에 임무를 마친 두 여성은 곧바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다.
당시 숨진 김정남의 얼굴에서 검출된 VX의 농도는 치사량의 1.4배에 달했다.
시티 등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리얼리티 TV용 몰래카메라를 찍는다는 북한인 용의자들의 말에 속아 살해 도구로 이용된 '순진한 희생양'인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들은 범행 직후 곧바로 출국한 북한인 용의자들과 달리 현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체포됐고, VX에 오염된 옷가지를 숙소에 그대로 방치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지 않은 점은 이용당했을 가능성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두 사람이 처음에는 속아서 관여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범행계획을 알게 됐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말레이시아 샤알람 고등법원은 작년 8월 두 사람과 북한인 용의자들 간에 김정남을 "조직적으로" 살해하기 위한 "잘 짜인 음모"가 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 왜 갔나…미국인 접촉설 진위는
또 하나의 의문은 김정남이 사건 당시 왜 말레이시아를 찾았는지다.
말레이시아 경찰 당국자는 작년 초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김정남이 2017년 2월 9일 말레이시아의 휴양지인 랑카위에서 한 미국인 남성을 만났다"고 증언했다.
김정남은 같은 달 6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했고, 랑카위에 도착한 것은 8일이었다.
그는 이후 가족이 있는 마카오로 돌아가려다 살해됐고, 그의 가방에선 12만4천 달러(약 1억4천만원)에 달하는 100달러짜리 신권 다발이 나왔다.
현지 경찰은 김정남이 갖고 있던 노트북에 문제의 남성을 만난 당일 USB 저장장치가 삽입된 흔적이 있었다고 밝혔지만, 사망 당시 김정남은 USB 저장장치를 갖고 있지 않았다.
일본 아사히 신문 등 일부 외신은 김정남이 접촉한 남성이 태국 방콕에 머물던 미국 정보기관 관계자라면서 김정남이 정보를 건네는 대가로 거액의 현금을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말레이시아 당국은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맹독성 VX의 출처와 반입 경로는
VX 신경작용제의 출처와 반입 경로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유엔이 대량살상무기(WMD)로 규정한 VX는 제조하는 데 대규모 시설이 필요해 국가 차원의 지원 없이는 손에 넣기 힘든 물질이다.
반입 수단으로는 '외교행낭(行囊)'이 거론된다.
재외공관과 본부가 주고받는 문서 주머니인 외교행낭은 겉으로는 평범한 주머니이지만 대사관과 마찬가지로 '치외법권'이 적용돼 소유국의 동의 없이 열 수 없게 돼 있다.
이는 VX가 외교행낭에 담겨 말레이시아로 반입됐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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