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레이와(令和)의 '和' 좋아해…출처로 일본 고전 선호
인터넷 여론 의식해 연호 선정 배경에 젊은이·희망 강조
(도쿄=연합뉴스) 김정선 특파원 = 오는 5월부터 적용될 일본의 새 연호(年號) '레이와'(令和)의 결정 과정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나루히토(德仁) 왕세자의 일왕 즉위를 한 달 앞두고 열린 각의(국무회의)에서 새 연호로 '레이와'를 선정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2일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레이와에 포함된 '和'는 아베 총리가 좋아하는 문자다.
이는 일본 자체를 뜻하는 말이기도 해 새 연호를 놓고 아베 내각이 '천황제'를 바탕으로 일본 중심의 국수주의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진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아베 총리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생전 퇴위 의향을 밝혔던 2016년 8월 이 문자가 적힌 액자 앞에서 언론취재에 응했던 적도 있다.
일본 정부는 새 연호 결정 전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 100개 이상의 후보안을 모았고 지난달 마지막 주에 레이와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 고전을 출처로 한 각 3개안, 총 6개 후보안으로 압축했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전부터 새 연호의 출처로 "일본의 고전을 포함해 검토해야 한다"고 주변에 말해왔다.
일본은 서기 7세기에 연호제를 도입한 이후 중국 고전만 인용해 왔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집인 만요슈(万葉集)를 출처로 하는 레이와는 아베 총리 '의중의 안'이었다고 요미우리는 설명했다.
그는 지난 1일 밤 NHK 프로그램에서 새 연호를 처음 본 시기는 3월이었다며 "학자들이 고안해 준 후보안 중 관방장관이 정리한 것을 보고 받았는데 그 중 '레이와'가 있었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설명을 듣고 매우 신선한 울림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밝은 미래로 연결되는 듯한 인상도 받았다고 밝혔다.
새 연호 발표 행사에도 아베 총리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1989년에 현재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발표할 때는 당시 관방장관이 결정을 전하고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의 담화도 대독했다.
이번에는 스가 장관이 새 연호를 발표하는 등 7분간 기자회견을 했는데, 이후 아베 총리가 직접 담화를 발표하며 18분을 할애했다.
아베 총리는 레이와를 선정한 이유를 '유구한 역사', '아름다운 자연'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설명했는데 이는 아베 총리가 2006년 제1차 내각 발족 전에 출판한 '아름다운 나라로'라는 책에서 사용했던 핵심어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는 특히 "젊은이들이 큰 꽃을 피워 희망에 가득 찬 일본을 만들어내고 싶다""며 젊은 층을 강조했다. 아베 총리의 지지층으로는 보수세력과 함께 젊은 층이 꼽힌다.
이를 두고 올여름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아베 총리는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 2일자에 실린 인터뷰에서 "만요슈가 선택돼 일본 문학의 훌륭함을 세계에 알리게 됐다"며 "연호는 일본에만 있는 것으로 그 시대의 '향기'도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연호를 새 일왕 즉위 전에 발표한 것에 대해 보수층에서 반발하는 것과 관련, "지금까지 그 절차가 이뤄지는 단계에서 연호가 결정, 공개된 역사를 생각한 것도 있지만 국민 생활에 지장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는 이처럼 보수층을 달래며 "그 영향을 최소한으로 억제해 앞으로도 연호가 국민과 함께하면서 일본의 중요한 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전날 담화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같은 정책도 거론해 마치 국회에서 하는 소신표명 같았다는 비판도 나왔다.
그는 만요슈에 대해선 "일본의 풍부한 국민문화와 오랜 전통을 상징하는 국서(國書)"라고 추켜세웠다.
이와 함께 일본 정부는 총리관저 회견실 배경에 붉은색 커튼을 쳐 축하 분위기를 연출하는 등 주도면밀하게 준비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아베 총리가 일본 고전을 선호한다는 정보는 정부의 연호 업무 담당팀에 이미 2~3년 전에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 연호 결정에 앞서 당일 오전에 열린 전문가 회의에선 레이와를 추천하는 의견이 가장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열린 각의에서도 일본 고전에서 인용하는 데에 반대는 없었다.
각의에서 아베 총리는 "한문 서적(중국 고전)도 좋지만, 일본 문학의 역사도 매우 오래됐다"며 "여러 의견을 모은 결과 이것이 가장 좋지 않은가"라고 말했다고 한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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