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보, 오페라 연출 첫 도전…"격정 '베르테르' 선보일것"

입력 2019-04-03 06:01   수정 2019-04-03 06:31

김광보, 오페라 연출 첫 도전…"격정 '베르테르' 선보일것"
서울시오페라단과 협업, 내달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데뷔 25년 만에 100회 연출…"원동력은 창작 행위 그 자체"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저 사실 베르테르 별로 안 좋아해요. 열정적 사랑이 과연 자살의 동기가 될 수 있는지 늘 의문을 들었죠."
서울시극단 단장이자 '스타 연출가'로 유명한 김광보(55) 연출은 예상치 못한 '취향 고백'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는 창작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2000년 초연 연출을 맡은 데 이어 다음 달 개막하는 서울시오페라단의 '베르테르'로 첫 오페라 연출에 도전한다.
최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김 연출은 그러나 "원작을 읽을 때도, 뮤지컬 연출을 맡았을 때도 베르테르란 인물이 가슴으로 와닿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독일 문호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은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고뇌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청년 이야기를 다룬다. 목숨을 바쳐 사랑에 매진하는 모습은 집착에 가깝지만, 순수와 청춘을 표상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베르테르가 결국 자살을 선택했는지 납득이 오랫동안 안됐었다"며 "이번 오페라 연출을 맡으면서 그 동기가 완벽하게 이해됐다"고 설명했다.
그를 납득시킨 건 음악이었다. 오페라 '베르테르'는 괴테의 소설에 프랑스 작곡가 마스네가 1887년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선율을 붙인 작품이다.
"오페라 '베르테르'는 소설이나 뮤지컬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간 베르테르를 다룬 작품들이 주로 서정적이면서 감상주의적인 면을 부각했다면 이 작품은 정반대에 가까워요. 굉장히 격정적이고 열정적이죠. 음악에 그 드라마가 완벽하게 구현돼 있어요. 욕망에 가까운 사랑을 갈구하는 베르테르와 로테(극 중 샤를로트)를 보게 되실 거예요."
그는 이 때문에 이번 작품 색깔을 "한 마디로 빨강"이라고 규정했다. "로테 역시 청순가련형이라기보다는 베르테르를 자살로 이끄는 팜므파탈형에 가까울 겁니다. '미친 사랑'의 실체를 끄집어 내보고 싶습니다."
무대는 현대적이면서도 인물들의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도록 꾸민다. 3막에서는 무대 삼면에 설치된 벽면을 타고 5톤가량의 가을비가 내리고 4막에서도 많은 양의 흰 눈이 쌓일 예정이다.


다만 연극계에서 줄곧 커리어를 쌓은 그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알진 못한다.
그의 첫 오페라 도전작인 '베르테르'는 오페라 가운데서도 어렵고 까다로운 작품으로 통한다. 어두운 음색이 주로 깔리며 주요 주제 선율들도 상당히 복잡한 편이다.
그래서 그가 택한 방식은 작품 속 모든 노래를 통째로 암기하는 것이었다. "지난 석 달 동안 음악을 완벽히 외우자는 목표를 세우고 실천했다"고 말했다. "음악을 잘 모르지만, 인물의 심리에 꼭 들어맞는 선율에 깜짝 놀라곤 합니다. 이런 부분들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하려고 해요."
탄탄한 출연진도 그에겐 힘이다. 지난해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미국 데뷔를 한 테너 신상근과 독일 프라이부르크극장, 뮌헨국립극장 등에서 주역 가수로 활동한 테너 김동원이 베르테르 역을 맡아 비극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메조소프라노 김정미와 양계화가 상대역인 샤를로트 역에 캐스팅됐으며, 경기필하모닉(지휘 양진모)이 연주를 맡는다.
1994년 연출가로 데뷔한 그에게 이번 작품은 첫 오페라 도전이자 100번째 연출작이란 의미도 지닌다.
"이번 작품이 69번째 연출작이자 100회째(재공연 등 포함) 연출작이에요. 연출 데뷔한 지 25년이 흘렀으니 1년에 평균 네 작품씩을 맡아온 셈이네요."

이 정도면 누가 봐도 '다작 연출가'다. 그는 특별히 안식년이나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적도 없다.
"100회를 꾸준히 해 온 게 제 창작의 원동력이고 충전의 에너지였던 것 같아요. 한 작품이 끝나면 탈진 상태죠. 근데 그게 다음 작품을 해야 충전이 돼요."
그는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부터 히서연극상, 서울연극제 대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동아연극상 연출상 등 연극계 굵직한 상은 모두 휩쓸었다.
작품성과 흥행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줄곧 다잡아온 그의 이름 자체가 이미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셰익스피어부터 소극장 공연, 창작 뮤지컬까지 연출 폭도 넓다.
100회 공연을 이끌면서 아쉬운 부분은 없었는지 묻자 "거의 없다"는 답변이 나왔다.
"작품이 다 좋았다는 말이 아니라, 여한 없이 작업을 해왔다는 뜻입니다. 곧 서울시국악관현악단과도 협업해요. 오페라에 이어 첫 국악 연출입니다. 이렇게 끊임없이 창작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축복으로 느껴집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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